침잠하는 세계를 바라보는 방관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매 새벽, 잠에 들지 못하거나, 잠을 자지 말아야 할 때마다 멸망하고 있는 한 세계의 낭떠러지에 서 있는 방관자가 된다. 나를 지탱하고 있는 이 가느다란 한 폭도 언젠가는 끊어질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부서지고 있는 것들을 다만 목도하고 무력해 한다. 그 연쇄를 끊어낼 수 있었던 적이 없다.

여느 밤과 새벽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늘 그렇듯, 가로선들과 어지러운 스캐치들을 바라보며 이것들을 끼워맞춰보려 한다. 나의 의지에 따라 나타나는 방향들과 음형들. 나타난 것들과 그 이후의 것들. 그리고 그 그 이후의 것들. 그리고 그 그 그 이후의···. 세어보던 나는 언제고 무한히 부유하는 돌멩이와 같아진다. 정향을 잃은 채 떠다니는 나는 곧 내가 적은 것들과 다를 바가 없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무거운데 중심 없이 떠다닐 수 있는 거야? 누군가 얼핏 나에게 말한 것 같았다. 속이 무거운 것과 중심이 있다는 것은 다른 거야. 어떻게든 속삭여 지난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렇게 방향을 모를 것이라면 차라리 가벼워졌으면 한다. 지나치게 많은 나를 덜어내고, 그렇게 해 내가 자꾸만 돌멩이가 되어가는 것에 얄팍한 당위성이라도 부여할 수 있다면 적당히 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다만 내가 이미 지나온 모든 시간과 지금 이 순간에서조차도, 늘 무거움이라는 질량을 유지했기에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 지나치게 많음에도 나는 이들을 쳐낼 수 없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너무 많은 색과 광물들이 엉켜 까맣게 되어버린 돌멩이. 그렇게 되어 더 닳아가도록 누차 굴러다닐 것이다. 반들반들 광이 나고 둥글어 누구도 찌르지 않도록. 허나 시작이 된 하나의 모래 알겡이는 찾을 수 없이 변하여서.

내 속의 갈래가 너무 많아 뭉치고 설켜 굳어진 것은 나의 욕심 때문일 것이다. 아슬한 만큼을 꾸역꾸역 밀어넣고 그것에 버거워 하며 소화에 애쓴다. 덜 녹아진 것을 가지고 자꾸만 새로운 것을 쓰려고 하고, 마냥 비약만을 바란다. 그리고 그 선택에 다시금 무게를 잃어버린다. 내 작은 세계 속을 부유해 다니며 왜 나는 자라지 않을까, 흐리고 두루뭉술, 도달해야 할 방향성은 맞는 설정일지, 하고 잔뜩 뭉쳐 딱딱해진 채로 웅크려 생각한다. 음을 선택하는 마음이 전례 없이 가벼워지고 있다. 뭉쳐 하나가 되어 풀어지지 못했기에 급급한 것이다. 그 선택들이 결국에는 쌓일 것을 알면서도 쉽사리 바꾸지 못한다. 굳어지기 시작하는 것들은 늘상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스스로 유보했기에 나는 오늘도 끄트머리부터 천천히 천장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봐야만 할 것이다.

이 와중에서도 나는 나를 지탱할 수 있는 것들을 어떻게든 찾아내보려 한다. 그 작은 것들이 나에게 그 부피만큼의 걸림이 되어 가벼움을 삼갈 수 있을 테니. 닻이라고 불리기 민망할 만큼 미미하게 내려져 결국 바닥을 긁어줄 테니. 이 무한한 부유의 길에서도 희뿌옇지 않은 것들은 분명 있다. 그들을 점점이 삼아 어떻게든 완결짓고, 새로운 생각들과 정돈을 얻은 적도 있었다. 유효한 행복과 감정들을 영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함께 흐려지지 않고 나로 존재한 채, 어떻게 내가 친애하는 것들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 나를 옭아맨다. 사랑에는 정의될 수 없는 수많은 낱말들이 함께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그 삼라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도록, 나아가는 것보다 마모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이. 가라앉더라도 뒤섞이지 않을 응결을.

작고 가벼운 것들을 의심한 적이 있다. 그 연약함을 무시하고 크고 깊은 것들을 찾아 헤맨 적도 많다. 그러나 늘 그렇듯, 그림자 없는 큰 덩어리란 희귀한 것이기에 내가 잡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자주 흘릴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그럴때면 더 동그랗게 뭉쳐 웅크리고만 싶어진다. 사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진다. 낱낱한 것들은 더 가늘어지고 끊임없이 길어져 다시 둥글게 말리고는 원이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 한 겹 더 두터워진다.

얇게, 그러나 착실히 두터워지던 것들은 내가 다른 존재들을 알아차렸을 때가 돼서야 처음으로 멈춰섰다. 보들하고 만질 수 없고 작거나 단단하고 무른. 말로 다 할 수 없이 너무나 다양한 그 조각들은 절대로 서로 엉켜 나빠지지 않는다. 서로 섞이지도 달라붙지도 않는다. 그저 각각의 사소함을 유지한 채 내 세계에 조금의 틈을 만들어 준다. 얇은 막에 물을 뿌려 투명하게 만들어 준다. 겉켜부터 천천히 스며들어온 것들은 지금 어디쯤의 층에 위치하고 있을지. 적셔지고 있는 나는 모른다. 나의 모든 작고 연약한, 그러나 끈기있는 것들에 감사한다. 그 조각들을 얻게 해준 모든 모체들에게도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또다시 밤이다. 어쩔 수 없는 밤이 온다. 다시 해체와 구축 그리고 해체, 혹은 그 같은 것들이 벌어질 시간이다. 나는 그러나 이번의 밤을 지나 새벽에서도, 역시나 자리에 바로 서서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볼 것이다. 기꺼이 무력해하고 힘껏 지켜보며 언젠가 이 부서짐을 지치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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