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기의 휴식(2019)

출처=드라마 스틸컷
출처=드라마 스틸컷

사회는 자꾸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쉬지 말고 달리라고 다그친다. 게임 속에서 퀘스트를 클리어하듯 사회에서 요구하는 각 단계를 착실히 완료해왔지만, 성인이 된 우리는 여전히 ‘나 자신’을 잘 모른다. 몸과 정신을 혹사해 얻어낸 결과물을 보면 보상처럼 만족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약간의 허탈함과 불안함 역시 찾아온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 걸까?

이 물음은 나기라는 여성에게도 주어진다. 나기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 의해 통제된 삶을 살았다. 특색있는 곱슬머리는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되어 아침마다 몇 시간에 걸쳐 머리를 펴야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항상 타인의 눈치만 살피느라 하고 싶은 말도 못 했고,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대신 해주는 일도 허다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최악의 순간은 역설적이게도 기회가 되었다. 애인과 직장동료의 배신은 나기에게 크나큰 상실과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는 모든 것을 버렸다. 살고 있던 집과 직장은 물론, 인간관계와 지금까지의 자신까지. 완전히 달라지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 나기는 ‘엘레강스 펠리스’라는 이름과는 사뭇 괴리감 있는 낡은 건물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했다.

물론 나기의 휴식은 동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처럼 완벽하지 않았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옆집 남자에게 푹 빠져 일상 리듬을 전부 잃은 채 그 남자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다. 또한, 집까지 찾아온 전 애인에게 심리적으로 끌려다니기도 하고,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모습을 꾸며내기도 했다. 그러나 나기의 소중한 인연이 된 옆집 모녀와 윗집 할머니, 그리고 그 동네에서 새로 사귄 친구는 그가 길을 헤맬 때마다 옆에서 기다려주기도, 쓴 충고를 던지기도 하며 나기가 스스로를 알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다. 팰리스 속 나기는 백마 탄 왕자님의 구원 대신 자신의 본 모습을 인정하고 힘들고 느리지만 스스로 길을 찾아가게 되었다. 엘레강스 팰리스에서의 휴식기를 통해 그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오시마 나기, 28세.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었지만... 어쨌든... 일하러 가자!"

이 드라마의 엔딩은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엘레강스 팰리스 생활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일상은 전처럼 나기를 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사소한 변화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이제 타인의 눈치도 덜 보고, 해야 할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시련을 회피하지 않고 나아갈 힘도 생겼다.

나기가 가졌던 휴식기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성공을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나기와 달리 자기 의사 표현도 잘하고 흔히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조차 내면은 텅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유행했던 ‘갓생’ 신화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번아웃 사례들이 이를 증명해준다. 사람들은 완벽한 ‘갓생’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며 달려가고 외면을 보기 좋게 꾸며낸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자각하지 못한 채 중간중간 불안을 느낀다. 이는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기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나기는 남들에게 완벽하게 보이기 위해 병들어가는 내면을 무시하는 우리에게 잠깐 휴식을 가지고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전하는 듯하다. 

우리도 잠시 멈춰서 나만의 ‘엘레강스 팰리스’를 찾아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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