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리 물리학과 교수
김정리 물리학과 교수

본교 물리학과에서 학부 및 석사과정를 마치고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본교에 부임하여 중성자별과 블랙홀의 성질 연구, 중력파 자료 분석 연구를 하고 있다. 과학과 대중 소통, 시각화를 통한 과학 데이터 활용에도 관심이 있다. 2008~2010년 마리퀴리 펠로우십, 2016년 브레이크스루상(라이고과학협력단 공동수상), 2017년 교육부 학술연구지원사업 우수성과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표창 등을 수상했다.

이대 교정에서 가장 추억어린 장소를 꼽아보자면 오후 햇살이 어린 중앙도서관 서가이다. 입학하고 한동안은 잊고 있다가, 공강 시간을 보낼 장소를 찾아 중앙도서관을 큰맘 먹고 올라가게 되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가장 먼저 가본 곳은 역시 전공 서적이 있는 서가였다. 청소년 시기에 책을 통해 접했던 수많은 위인이 직접 작성한 저서와 번역본, 수많은 전공 관련 서적이 도서관에 빼곡히 꽂혀 있는 것을 보고 감격했던 것이 학부 1학년 2학기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서관 공간에 익숙해지고 나서는 서가 자체가 개인적인 휴식과 힐링의 공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주로 전공 공부나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아 읽다가, 점차 도서관의 모든 서가 복도를 다니면서 책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전공 서적뿐 아니라,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도서관의 사서와 학우들이 고심하여 갖춰놓은 책이 무엇인지를 탐험하는 마음으로 보고 또 읽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서관에서 매우 간접적이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교류들도 있었다. 비슷한 시간에 같은 서가에서 늘 책을 읽고 있던 이름도 모르는 동문과 눈인사만으로 안부를 전하던 기억, 대여한 책을 먼저 빌렸던 사람들이 종이 위에 개인적인 소감이나 낙서를 해둔 것을 보면서 잠시간 웃음 지었던 것도 지금은 좋은 추억이다(전공 서적을 빌려 문제를 풀다가 풀이가 막혀서 적어놓은 하소연이라든가, 풀이 팁이라든가)!

책 사이에 예쁘게 말려진 나뭇잎 책갈피가 끼워져 있던 적도 있었다. 부디 주인이 찾아가기를 바라며 빼지 않고 반납했는데, 아직도 나뭇잎이 그대로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읽고 있는 책이 이전에 다른 학우들이나 선배들이 읽은 책이라는 걸 체감하면서 도서관이 점차 소통의 공간으로도 느껴지게 됐다. 유학을 계기로 이대를 한동안 떠나있다가 다시 돌아와 도서관을 찾아보니, 공간 배치가 일부 달라지고 최신 서적 관리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서가 자체는 그 모습이 크게 변하지 않아 반가운 마음이다.

현재 중앙도서관 서가 전경. 제공=중앙도서관
현재 중앙도서관 서가 전경. 제공=중앙도서관

공상과학소설에서 접했던 전자책(e-book)이 현실화하고, 책을 포함한 대부분 글을 모니터로 읽는 시대가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책을 읽는 사람보다 휴대폰 화면을 스크롤하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 전자기기로 정보를 탐색하거나 글을 읽을 때,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손가락이나 눈이 다음 페이지로 화면을 넘기게 되는 것이 아직 낯설다. 사람마다 책 읽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종이책을 읽을 때는 손과 눈과 머리를 온전히 집중하여 글을 읽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이 과정을 통해서 글쓴이와 교감하고 소통하면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21세기 우리 사회는 약속 시간과 목적이 없는 막연한 시간 보내기의 가치를 예전에 비해 잊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도서관에서 종이책에 둘러싸여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경험은 대학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특별한 경험 중 하나가 아닐까. 최신 전자기기를 활용하며 바쁘게 지내다가도 가끔은 책의 글쓴이와 소통하고, 독서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무엇보다 책을 통해 스스로와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김정리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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