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코크 UCC 약대에 1학년 재학 중인 신입생 만 28. 지금의 나를 정의하는 단어다. 한국인의 상식에서는 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녀야 할 나이건만, 왜 다시 대학으로 향했는지 그리고 또 왜 꼭 아일랜드였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고등학생 시절 나의 1순위 목표는 약대 진학이었다. 당시 약대는 신입생을 선발하지 않고 대학 2학년 이상 과정 수요(예정)자가 약학대학입문자격시험 (PEET)을 응시한 후 오직 편입으로만 입학 가능했다. 분자생명과학부 13학번으로 입학해 2학년 1학기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PEET 시험에서 고득점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휴학 후 2년여간 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결과는 분하게도 불합격이었다. 결국, 학교로 돌아와야 했지만 운이 좋아 삼성바이오, 셀트리온, LG화학 등의 기업들이 대규모 공개 채용을 진행한 덕분에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었다.

입사 후 처음 1년 반 동안 DS 생산일정 및 재고 관리 업무를 맡았다. 직무를 하면서 트인 시야를 갖게 됐지만 한계점 또한 직시하게 되었다. 또한, 이론으로 배운 GMP만으로 현장에서의 이슈를 파악하기엔 너무나 부족했다. 상사와의 진지한 상담을 거쳐 힘껏 배우고 언제든 돌아오라는 조건으로 GMP부서인 DS생산기술팀으로 소속을 변경하게 되었다.

DS생산기술팀에서의 생활은 다시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연구소로부터 개발된 신규 의약품이 상업 스케일에서도 균일한 품질로 생산될 수 있도록 기술 이전에 참여하고, EMA/FDA 규제기관 등의 감사 대응을 하는 업무를 했다. 배움의 기쁨이 커서 업무 강도와 별개로 일이 즐거웠다. 2년 뒤 DS생산의 세계에 적응했을 때쯤 기존 팀장님으로부터 다시 팀에 돌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나를 믿고 보내주었던 팀장님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고민 끝에 돌아왔지만 업무에 대한 무력감이 컸다. 아무리 열심히 중장기 DS생산일정을 조율하고 회사를 위한 큰 그림을 그린대도 결국 위에서 원하는 대답은 정해져 있다는 압박을 지울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5년정도 경력을 더 쌓고 MBA에 진학할 생각이었지만, 기획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차라리 생명공학 석사를 마치고 생산기술팀 커리어를 살려 연구직으로 가볼까 고민도 했었다. 그런데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국내 대학원은 학업 외 고려사항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동하지가 않았다. 그쯤에 불현듯 아일랜드가 떠올랐다.

아일랜드는 법인세가 낮은 덕에 많은 글로벌 제약 회사들의 지사가 위치해 있다. 아일랜드에 위치한 제약회사들은 정부, 대학들과 협업해 제약산업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 NIBRT을 운영한다. 한국에서도 바이오 산업 특화를 위해 한국 정부와 연세대학교가 협약을 맺어 일명 K-NIBRT 운영을 시작했는데, 해당 교육을 1기로 수강했었다. 당시 수업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이 기회에 NIBRT을 수료해 아일랜드에서의 글로벌 제약회사들이 표준화한 바이오 공정을 배워 전문인력이 되고자 했다. Pfizer, Abbvie 등 글로벌 제약 회사들에 재취업하는 것에도 눈길이 갔다.

그런데 아일랜드, 제약, QP 등을 키워드로 검색하다가 우연히 아일랜드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자동으로 QP 자격이 부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QPQualified Person의 약어로, 유럽 권역내 제조된 의약품의 품질 기준을 관리 및 보증하는 전문 자격인을 뜻한다. 유럽에서 판매되는 모든 의약품은 출하를 위해 반드시 QP의 승인이 필요하기에 총 책임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가 아일랜드로 떠나기엔 충분했다. 또한, 아일랜드 약사 자격 역시 부여돼 졸업 후 유럽은 물론 한국에서도 별도 시험을 응시한 후, 약사로 근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학사정관제도를 통해 합격 통지를 받아 아일랜드 약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쩌면, 아일랜드행은 필연이었을 테다.

현재 나의 꿈은 약대를 졸업하고 QP 자격을 얻어 글로벌 제약 회사에서 필드 경험을 쌓은 후, 최종적으로 한국 바이오 기업들을 대상으로 유럽 의약품 출하 컨설팅 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교 취업 박람회를 기웃대며 Pfizer, Johnson&Johnson 등의 글로벌 기업들과 눈도장을 찍었다. 덕분에 내년 여름 인턴십을 위한 비공식 인터뷰 기회도 얻었다. 자랑스러운 이화인으로서, 내일도 나는 도전을 이어갈 것이다.

 

GMP: Good Manufacturing Practice, 의약품 제조 품질 관리 기준이라는 뜻으로 의약품의 안전성이나 유효성을 보장하는 기본조건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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