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월드워Z(2013)

<strong>출처=영화 스틸컷
출처=영화 스틸컷

‘전염병 주식회사’라는 게임이 있다. 내가 전염병이 돼 전 세계 인구를 모두 감염시키고 치료제 개발을 막는다. 결국 세상에 건강한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되고,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면 승리하는 전략 게임이다. 졸업과 출근 사이, 잠깐의 백수 생활을 만끽하고 있는 융합보건학과 학생이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전공지식을 이용하는 악당이 된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한참 이런저런 병원균으로 이 세상을 멸망시킬 궁리를 하다 보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브래드 피트의 나 홀로 좀비 바이러스 역학조사 모험을 담은 <월드워Z>다.

전업주부가 돼 가족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전직 UN 조사관 ‘제리’는 아이들의 평범한 등굣길이 순식간에 좀비 서바이벌 현장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한다. UN 사무차장의 연락을 받고 옥상에서 구조헬기를 타고 작전 본부이자 피신처가 된 UN 사령함에 무사히 도착한다. 그러나 조사 임무에 응하지 않으면 가족 모두 배에서 내려야 한다는 말에 ‘제리’는 어쩔 수 없이 0번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미군기지로 향한다. 같이 간 하버드 출신 박사는 사고로 목숨을 잃고 결국 혼자 바이러스의 근원을 파헤치게 된 ‘제리’. 좀비들을 향해 던진 수류탄으로 인해 0번 환자에 대한 모든 자료는 가루가 돼버렸다. 별다른 수확 없이 돌아갈 수는 없어 좀비 역병 발생 직전에 나라 전체를 둘러싸는 장벽을 완성했다는 이스라엘로 떠난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적극적인 해결책 대신 숨는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결국 장벽을 타고 넘어오는 좀비들을 피해 간신히 여객기에 올라탄 ‘제리’는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동안 목격했던 일들을 상기한다. 좀비들이 날뛰는 혼돈 속에 아무렇지 않게 앉아있는 노인, 다리를 저는 유일한 생존자, 좀비들 틈에서 귀를 막고 몸을 움츠리는 소년 등을 기억하고 편승한 비행기의 목적지를 세계보건기구(WHO)로 정한다. ‘제리’는 UN 최고의 조사관답게 스치듯 본 것들을 놓치지 않고 바이러스가 건강한 숙주를 골라 감염을 전파한다는 가설을 세운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그린 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귀납적 추론 장면이다. 흔히 좀비를 다룬 작품이라면 미친 듯이 쫓아오는 좀비와 목숨 걸고 도망가는 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월드워Z>는 좀비 영화의 긴장감이라는 기본 덕목을 갖추면서도 논리적으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재미를 더했다.

WHO 연구시설에 도착한 그는 아픈 숙주로 위장해 좀비 눈앞에서 투명 인간이 되는 방법을 고안한다. 표본과 사례가 턱없이 부족하고, 증명할 방법은 스스로 실험 대상이 되는 것뿐인 극단적 상황은 절박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치명적이지만 치료할 수 있는 병원균을 주사하기 위해 이미 좀비로 가득한 B동으로 향한 ‘제리’는 일행과 흩어져 결국 혼자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좀비와 대치하게 된다. 더는 물러날 수 없게 되자 효과가 있을지 알 수 없는 병원균 표본을 스스로 주사한다. 즉석 ‘위장 백신’을 맞은 그는 아무렇지 않게 좀비들 사이를 걸어 돌아온다. 그의 실험이 성공하고 인류는 백신을 만들어 좀비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영화는 전쟁의 끝이 아니라 시작을 알리며 막을 내린다. 코로나19 4차 백신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 속 백신의 효과성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3년째 코로나19와 사투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좀비와 전쟁을 한창 하고 있는 <월드워Z>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2022년 가을 학기는 전면 대면으로 개강을 맞이했다. 이를 축하하듯 총장은 대강당 앞에서 피자 이벤트를 열었다. 대학 정상화를 위해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벗들은 정말 오랜만에 대동제를 즐겼고, 강의실에서 교수님의 얼굴을 보며 수업을 듣고 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28일 언론은 새로운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 이름은 ‘BA.2.75.2’. 읽기도 난감할 정도로 복잡해진 이름은 그만큼 변이 바이러스가 거듭 나타났다는 방증이다. 바이러스는 점점 감염률이 높고 치명률이 낮은 방향으로 진화한다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원숭이 두창이 유럽에 퍼지기도 했다. 우리는 사는 동안 몇 번의 크고 작은 전염병을 경험하게 될까? 전략 게임처럼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항상 긴장하고 마스크를 쟁여놓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 된 것 같아 이 영화에 계속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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