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9월14일, 신당역에서 순찰을 돌던 20대 여성 역무원이 30대 남성에 의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 남성은 피해자의 서울교통공사 입사 동기로 지난해 10월 피해자를 불법 촬영하여 고소당했으며 직위해체된 이후 원한을 품고 보복성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우리는 해당 사건을 단순한 보복성 범죄의 영역으로 보아 마땅한가? 신당역 사건은 단순한 보복성 범죄, 개인사에 의한 비극으로 볼 수 없으며 구조적 성폭력에 대한 안일한 대처의 결과물이다. 아래에서는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미시적 시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한국 사회•정치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사건을 둘러싸고 가장 뜨겁게 일고 있는 논쟁 중 하나는 “신당역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간주할 수 있는가”이다. 사건 발생 이후 9월17일, 신당역 추모 공간에 방문했던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발언이 화두에 올랐다. 그는 해당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로 봐야 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대해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이중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 이는 6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강남역을 방문했던 당시 강은희 여가부 장관의 발언과 오버랩되는 모습을 보인다. 강남역 사건 이후 신당역 사건이 발생하기까지의 지난 6년간 한국 사회와 정치계는 이슈를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숙의의 시간을 거쳤어야 했다. 그들이 피하고 싶어 하던 소위 ‘젠더갈등’과 여성혐오 범죄는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깊이 스며들어 해결되지 못한 채 숙제로 남아있다. 다시 김현숙 장관의 발언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성별 갈등으로 인해 사회분열이 발생할 수 있기에 사건을 바라볼 때 특정 젠더가 처해 있는 위험을 가시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나는 그가 말하는 “남성과 여성의 이중프레임”이란 존재할 수 없는 개념임을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성별 간의 이중프레임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과 갈등을 만들어낼 만큼 동등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는지부터 고찰해야 한다. 그러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여성은 여전히 남성에 비해 취약한 계층에 있다. 2019년 기준 민간기업•공공기관의 여성 관리자 비율은 약 21%이며 여성의 경력단절과 재취업 실태를 나타내는 M자 곡선은 뚜렷한 M자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외에도 2011년부터 2020년간 강력범죄 피해자의 86.7%가 여성이며 특히 강력범죄에 해당하는 성범죄 피해자의 90% 이상이 여성이었다. 위의 수치 외에도 다양한 통계와 사례를 통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권을 가지지 못하고 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즉, 젠더 갈등은 애초에 발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여성 대상 강력범죄를 개인의 문제로 인한 범죄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젠더폭력의 관점을 통해 여성혐오 범죄의 범주로 분류하여 마땅하다.

한국의 정치권과 사회는 여성혐오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강력범죄에 대한 사법제도 및 스토킹 피해자 보호제도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의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 확립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자 보호제도•사법제도의 개선을 강조하는 이유는 여전히 성범죄 가해자에 주어지는 처벌이 너무나도 가볍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양형기준이 적용된 성범죄 사건 중 실형은 2010년 53.7%에서 2019년 40.9%로 감소한 반면, 집행유예의 경우 46.3%에서 59.1%로 증가했다. 특히 강간 사건에 대한 판결에서 집행유예의 비율이 2배가량 증가했으며 13세 미만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의 집행유예 또한 43.2%에서 51.1%로 증가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 이유로 법관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을 꼽았다. 기존의 판례를 우선시하는 법관의 관행과 젠더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이 합쳐져 소위 “솜방망이 처벌”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스토킹 피해자 보호제도가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발생한 스토킹 관련 범죄 신고 건수는 4515건이다. 그러나 이 중 89%는 무혐의로 사건이 종결되었으며 11%는 경범죄로 처벌되었다. 20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스토킹 범죄의 가해자는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 피해자 보호제도는 미비한 실정이다. 신당역 살인사건의 피해자 또한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 신분이었으며 가해자를 스토킹 혐의로 두 차례 고소한 상태였다. 그러나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하였고, 재판 전날 피해자가 살해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러한 범죄의 발생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사회구성원의 성인지 감수성을 확립하기 위한 사회정책이 시행되어야 한다. 성인지 감수성의 개발을 통해 사회구성원들이 젠더폭력의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 보호조치,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해자를 구제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 또한 우리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주체로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원고를 작성하고 있는 오늘, 여전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스토킹, 불법 촬영 관련 뉴스는 약 6건 보도되었다. 여성과 남성이 동등한 행복과 안위를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현재의 사법제도를 되돌아보는 숙의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