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년이라 학교와 거리두기 중이던 지난여름, 연세대 대학생들이 청소, 경비노동자의 학내집회를 학습권 침해 사유로 형사소송에 이어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무려 5개월간의 투쟁 끝에 이들의 시급이 8월 말 약 400원 남짓 올랐다고 한다. 내가 다녔던 80년대의 대학과 너무나 다른 모습에 놀라지 않은 것은 아니나, 전쟁 같은 취업 상황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학습권과 노동권이 동시에 침해될 때 어떤 권리가 우선되어야 할까? 법원은 청소노동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6년 한국외대에서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1심과 항소심 모두 파업은 어느 정도 학생과 학교의 이익을 침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어 손해배상 청구를 인정하지 않았다. 2020년 대법원 판례에서는 원청에서 집회를 하다가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한국수자원공사 용역업체 청소노동자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그런데, 노동권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사법적 판단에서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 사안을 시공간적으로 확대해서 생각해 보자면, 학습권은 대학 재학 기간에 한정하여 학생의 이익을 보호해 줄 수 있지만, 노동권은 대학 졸업 후 수십 년간의 직장생활에서 학생의 미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권리이다. 헌법에 보장된 이 중요한 권리가 어떤 사유로도 어떤 대상에게도 침식되어 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 사건은 소송 그 자체보다도, 그 과정에서 사용된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먹고사는 청소노동자들”이라는 표현이 더 충격적이었다. 청소노동자의 힘든 노동으로 깨끗한 환경을 누리면서도 누군가의 표현처럼 이들을 “아래”로 보는 것이 아닌가. 능력주의가 대세인 현실에서, 또 그런 능력주의를 대표하는 학벌 사다리의 상층에 있으면 이런 표현을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코로나19 이후 원격수업이 고교유형별로 교육불평등의 확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해 사회학과 학부의 배다연, 유지수, 그리고 대학원의 김은지, 이주은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여 『경제와 사회』지에 올해 초 발표한 논문에는 특히 우수한 특목고나 자사고에 다니는 학생들이 이러한 인식을 갖게 되는 기제가 나타나 있다. “‘소비자’로서의 학생과 그 가족이 지불한 값비싼 등록금은 학교 측에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압력과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원을 확충할 기회를 제공하는데, 이러한 자원으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여 우수한 대입 성과를 거두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정보와 자료에 기반하여 계속해서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선순환이 발생한다. 이렇게 학교에서 평등하게 분배되는 풍부한 자원의 혜택을 받은 학생은 자신의 ‘의지’만이 성적과 성과를 결정하는 경험을 통해 시험성적에 따른 학력주의 위계서열을 정당한 노력에 따른 결과로 내면화할 수 있다”.

재능은 상당 부분 타고나며, 끊임없이 그 재능을 갈고닦는‘노력’이야말로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적절한 관심과 도움을 얻을 때 함양 가능한 가장 중요한 재능일 수 있다. 재능과 노력에 더 많은 갈채를 보내는 것에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극단적인 임금 격차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비정규직 종사자에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보상하는 의미에서 오히려 정규직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다. 나쁜 운으로 인한 모든 불평등은 최소화하는 것이 맞다.

이런 현실을 타개할 희망을 나는 성차별에 저항하는 여성 청년에게서 찾는다. 지금과 같은 기계적인 능력주의는 결코 집단으로서의 여성 전체에 유리하지 않다. 시장에서의 경쟁은 여성에게도 공정하게 게임에서 뛸 기회 주는 것같이 보이긴 하지만, 가사와 양육 등 노동력 재생산에 중요한 돌봄 노동을 공정하게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측정되는 여성의 능력은 조직 내에서 평가절하되어 구조적으로 차별받을 수밖에 없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노동에 대한 억압 모두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라는 독립적인 내적 동력과 기제를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러나 성차별의 극복 없이 평등한 노동은 존재할 수 없으며, 노동문제의 해결 없이 성평등을 성취할 수 없다.

따라서, 지금은 우리가 신봉하는 능력주의에 드리운 차별의 그림자를 찾아내어 지워가는 일을 시작할 때이다. 더 많은 이화인들이 차별금지법의 통과와 같은 실존적 인권 보호, 성평등한 복지국가 패러다임의 확산과 기존 사회보장체제 밖의 국민에 대한 사회권 강화, 경제의 이중구조와 부와 소득의 극단적 양극화 방지, 여성의 유리천장 타파, 모든 조직에서의 모든 종류의 폭력 근절, 장애인의 이동권과 일할 수 있는 권리 보장 등에 관심을 가지고 지지해 준다면 다른 대학의 학생들도 동참해 주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지난여름 옆 대학에서 일어난 것과 유사한 사건들도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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