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명의 여성이 살해당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대학보입니다. 항상 독자 여러분께 올리던 첫인사 대신 추모의 말로 글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20대 여성 역무원이었던 피해자는 신당역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중 한 남성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2년간 스토킹했으며 법원의 선고 직전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문제는 시스템의 부재였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방치한 서울교통공사, 추가 범죄의 우려가 있음에도 가해자를 구속 조치하지 않은 경찰과 법원 모두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했습니다. 사회는 온당히 나서서 여성 시민의 안전한 일상을 보장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막을 수 있었던 범죄였고, 지킬 수 있었던 생명이었습니다.

저는 “네 몸은 네가 지켜야 한다”는 경고를 늘 듣고 자랐습니다. 일상의 공간에서 예상치 못한 폭력에 직면했을 때, 시스템이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아마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멀지 않은 것일 겁니다. 사회가 여성인 나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공포, 나를 지킬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외로움. 우리의 공통적인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 가해자 중 남성의 비율은 95%,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은 약 85.8%입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분노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건의 가해자 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에서 방향까지도 명백합니다.

안 만나 준다, 날 무시한다, 어떨 때는 이유도 없이, 일부 남성이 여성에게 가당찮은 이유를 대며 폭력을 가할 수 있는 이유는 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의 역사와 그 맥락을 같이합니다. 가부장제의 논리 하에서 남성들은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며 선택 가능한 자원’이라고 듣고 보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입니다.

추모의 발걸음을 옮기는 학생들, 슬픔과 분노로 술렁이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학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오래 고민했습니다. 다음 호인 1648호에는 지난해 여성폭력 실태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들은 어떤 폭력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기획기사가 발행될 예정입니다. 기사를 통해 ‘여성혐오 범죄는 아니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이 우리 사회 젠더 폭력의 실상을 충분히 고려하고 단언한 것인지 파악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신당역 사건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여성 직원의 당직을 줄이는 방안을 대책이라며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인가에 있어서는 여전히 의문이 듭니다. 죽지 않고 일하게 해달라는 말에 ‘일을 줄여 주겠다’고 답한다면, 여성 살해의 공간은 일터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질 뿐 여전히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3기니>에서 ‘여성인 내게 조국이란 없다’고 썼습니다. 또다시 밀려드는 고통의 파도를 마주하며 독자 여러분께서도 오랜 밤을 잠 못 이루고 계신 줄로 압니다.

한편으로, 이어지는 문장에서 울프는 ‘여성으로서 나의 조국은 전 세계’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다른 여성의 아픔을 만날 때 기꺼이 그 옆에 서서 함께할 용기를 갖고 있습니다. 청년 여성이었던 피해자를 마음 깊이 추모하며, 연대의 힘으로 어두운 밤을 지나올 우리를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