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구경이(2021)

출처=JTBC
출처=JTBC

‘모든 생명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 이를 긍정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부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호하게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최근 사회면의 끔찍한 뉴스들을 보고 난 후 저 질문을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대다수가 부정적인 대답을 하지 않을까. 드라마 <구경이>는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아주 철학적인 이야기다.

여기서 범죄자들에게 죽음을 선물로 내어주는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연쇄 살인마 K이다. 연쇄 살인마임을 숨기며 살아가는 K의 본명은 송이경으로, 활발한 아가씨인 척 살아가지만, 무서운 얼굴을 뒤에 숨기고 있다. K는 ‘죽일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죽여도 된다’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이런 송이경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 주인공 구경이가 있다. 40대 초반의 과거 유능했던 경찰이었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방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했다. 그런 구경이에게 연쇄 살인마 K가 등장한다. ‘죽여도 싸다’라는 말에 구경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야 한다’라고 대답하며 K가 저질러 놓은 범죄 현장에 찾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드라마 속에서, 그리고 시청자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다.

<구경이>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도전한다. 첫 번째로 드라마의 메인 캐릭터가 모두 여성이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성 캐릭터가 빠지면 극 중 이야기의 전개에 부재를 느끼게 된다. 이는 미디어 산업에서 중요하고 이목을 끄는 역할을 남성 배우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에서 여성 캐릭터로는 구경이와 K의 대결에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중년 여성 보스 용 국장, 구경이의 조력자인 듯하면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나제희. 네 명의 여성이 아슬아슬하게 펼치는 눈치 싸움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 드라마에 더욱 몰입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두 번째로 다른 미디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흔치 않은 캐릭터의 설정이다.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살인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생각해 보자. 꼭 여성을 죽이고 나서 비릿하게 웃는 잔인한 남성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가? 구경이에서는 연쇄 살인마의 얼굴이 너무나도 해맑게 웃는 20대 여성으로 설정돼있어 보는 이들에게 신선함과 혼란스러움을 동시에 안겨 준다. 그리고 죽이는 대상 역시 ‘죽일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은 죽여도 된다’라는 K의 신념에 맞는 대상만 추적하여 죽이는 아주 치밀한 작전을 보여 준다. 이를테면 디지털 성범죄, 여성 혐오 범죄를 일으킨 가해자를 살해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이는 수많은 미디어에서 힘 없고 연약하며 무고한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본 우리에게 대신 복수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시청자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철학적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주인공 구경이도 특이한 캐릭터 설정이다. 보통 탐정의 이미지는 진중하고 논리적인 성격을 가진 편인데, 구경이는 40대 초반의 게임에 빠진 일명 오타쿠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제법 괴팍한 데다 하나에 빠지면 주변이 보이지 않는 답답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K의 살인 현장을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어떻게?’라는 생각을 가지고 K의 범죄를 똑같이 재현해 내어 K와 구경이가 비슷한 결의 사람이라는 걸 보여 준다.

이성애 중심의 로맨스가 판을 치는 드라마계에서 <구경이>는 아주 소중한 존재이다. 죽음과 삶이라는 철학적인 소재를 가지고 범죄 현장을 재현하는 연극 같은 연출과 잔인할 수 있는 장면들을 게임 속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까지 미디어에 쉽게 폭력이 노출되지 않도록 한 센스가 돋보인다. 특히나 게임 같은 연출은 누구나 쉽게 답할 수 없는 ‘모든 생명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 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한 캐릭터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제 당신이 <구경이>를 보며 여정을 떠날 차례이다. 우리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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