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원인을 둘러싼 논쟁을 촉발시켰던 미국의 브루스 커밍스교수(노스웨스턴대)가 올초 뉴욕의 노튼출판사에서 1860년대부터 1996년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른 「한국의 양지(Place in the Sun)」를 펴냈다.

이 책은 그의 이전의 저서가 북침설을 일방적으로 정다화시킨 것에 비해서는 상당히 균형감을 갖춘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느끼고 있는 현실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나 문화에 대한 커밍스의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예는 이것뿐이 아니다.

하버드대학의 역사학 교수이며 주일대사를 지낸 라이샤워와 페어뱅크가 공저한 동양사(원제:「East Asia : Tradition and Transformation」)도 우리가 느끼기에는 사실과 상당히 다르며 우리나라를 중국이나 일본에 지나치게 비하하고 있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게된 것은 대학입학시험을 치루고 난 뒤인데 이책을 읽으면서 한국에 대한 그의 편견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책의 전반적인 흐름은 한국이 반만년 역사를 간직한 문화민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의 연장 또는 부속국 정도로 취급하고 있다.

전체 28장 가운데 15장을 전통부분에 대해 서술하면서 한국은 아직 국가형성이 미숙하다고 주장하고 후반 13장 현대화 과정을 다루고 있으나 주체적으로 현대화된 건이 아니라 서구의 영향으로 수동적으로 현대화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더구나 현대화과정을 취급한 13장 가운데서 한국을 독립된 장으로 두지않고 중국이나 일본을 기술하는 장의 일부에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에 대한 기술이 211면인데 비해 한국은 겨우 17면만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을 초기에는 중국문화를, 후기에는 서양문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창의성 없는 국가로 매도하고 있다.

이와같은 사실의 실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 한국은 선사시대부터 중국문화의 영향을 받았음(p. 278-279) 2) 일찍이 한국의 남반부를 일본이 통치하였음(p. 280-281) 3) 불교가 중국에 전례된 것만 강조하고 신라 승려들이 불교발전에 공헌한 사실을 빠뜨림 4) 조계종만 기술하고 선종과 교종의 역할은 기술하지 않았음(p.295) 5) 팔만대장경은 언급하지만 금속활자에 대한 언급은 빠뜨림(p.295) 6) 왜구의 야만적 행위와 한국의 승리사실을 누락시킴 7) 조선의 등장을 시민의식의 향상과 관계없는 궁정쿠데타로 왜곡시키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음(p. 299-300) 8) 유교의 도그마를 너무 강조하여 한국의 인상을 나쁘게함(p.301) 9) 조선중기의 당파싸움을 일본 식민사관에 입각해 기술하였음 (p. 313-315,317) 10) 한국의 민족주의 의식이 고양되는 과정에서 기독교의 역할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동학 등 전통적인 반외세 자주주의의 경향을 낮게 평가하고 있음(p.887) 세계2차대전 이후부터 강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영향은 세계의 외교, 무역, 군사, 과학, 문화 등 모든 면에서 점점더 커지고 있다.

한국이 고유한 전통문화를 발전시켜온 문화민족이라는 것을 세계에 알리는 가장 빠른 길은 미국인이 읽는 역사책에, 미국내에서 읽히는 역사책에 이 사실이 밝혀지는 일일 것이다.

미국의 도시에서 거의 같은 재료로 만든 점심식사 비용이 일본 ‘쓰시’는 15달러이고 월남국수는 3달러라는 것은 미국인의 문화적 편견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국이 세계 문화발전에 기여한 문화민족국가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 우리의 긍지를 높히고 우리가 정당하게 평가받는 방법이다.

이제 우리도 미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동양사가 문화적 편견에서 벗어나 양식있는 학자의 손으로 다시 쓰여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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