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House(이하우스) 식당 9월 6일 점심메뉴 제공=이하우스식당 인스타그램
E-House(이하우스) 식당 9월 6일 점심메뉴 제공=이하우스 식당 인스타그램

 

“학생 식당에 채식 메뉴가 없어 나가서 사 먹었어요.”

이서현(도예·20)씨는 모든 동물성 식품을 섭취하지 않는 비건을 지향한다. 그는 학생 식당에 채식 식단이 마련돼있지 않아 매번 학교 밖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본교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everytime.kr) ‘채식벗’ 게시판에도 학생들의 불만을 찾아볼 수 있다. “비건으로 학식 먹고 싶다”, “채식 식단이 없어 학생 식당은 갈 생각도 못 한다”, “기숙사 살아도 기숙사식 먹을 날이 없다”는 게시글이 주를 이뤘다.

한국채식연합은 2022년 1월 기준 국내 채식인구를 약 150만~20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20~30대 청년층을 중심으로 채식인구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찾아볼 수 없는 채식 학식

이런 흐름과는 달리 본교 식당에서는 채식 메뉴를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운영 중인 진선미관 식당, 공대 식당, 이하우스 식당, 한우리집 식당 네 곳 중 어느 곳도 채식 식단을 따로 준비하고 있지 않다.

 

이하우스 식당의 5일~8일 식단표를 분석했을 때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72개 중 28개(식단표 표시된 메뉴)뿐이었다. 이마저도 밥류 6개(쌀밥, 흑미밥 등)와 샐러드류(양배추샐러드, 사과샐러드 등) 5개, 디저트류(홍초에이드, 바나나 등)가 포함된 수다.

메뉴판에서 정확한 재료나 성분을 확인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채식은 모든 종류의 동물성 음식을 먹지 않는 비건이나 유제품, 동물의 알, 동물성 해산물까지 섭취하는 페스코 베지테리언, 상황에 따라 육식도 하는 플렉시테리언 등 여러 단계로 나뉜다.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채식 단계에 따라 액젓이나 젓갈 등을 사용했는지, 육수를 고기나 멸치로 우려냈는지 등의 정보가 필요할 수 있다. 본교 비거니즘 지향 동아리 솔찬 부원 하지연(커미·19)씨는 “영양 성분표가 채식인들에게 친절하지 않다”며 “알레르기 성분 표시만으로는 동물성 재료가 조리 과정에서 포함됐는지, 해당 재료를 피해 배식받을 수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채식 식단 도입의 현실적 어려움

“채식 메뉴까지 진행하기에는 인력이 부족하죠.”

이하우스 식당 영양사 이윤정씨는 채식 식단 도입의 어려움으로 인력 부족을 꼽았다. 이하우스 식당은 5명이서 1학기 기준 350~550인분을, 방학 기준 100인분을 조리한다. 이씨는 “채식을 도입하면 일반식과 함께 두 개의 식단을 운영해야 해서 업무가 2배로 늘어난다”고 말했다. 진선미관 식당 영양사 임윤주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5명이서 학기 중에는 평균 400인분을, 방학에는 300인분을 만들어요. 인력도 부족하고 주방 공간이 작아서 두 개의 식단을 운영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채소 물가 상승도 채식 식단 도입의 어려움 중 하나다. 이씨는 건강한 식사를 위해 채식 위주 식단을 고려했지만 채소 가격이 높아 실행하지 못했다. 임씨는 “요즘 채소 가격이 너무 높고 하루하루 달라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2년 8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신선식품지수는 전월대비 5.4%포인트, 전년동월대비 2.8%포인트 상승했으며 그 중 신선채소는 전월대비 11.7%포인트, 전년동월대비 28%포인트 상승했다.

여러 채식 단계 중 어떤 단계를 기준으로 세울지 정하기도 어렵다. 2019년 본교는 솔찬과 학생들의 요구로 이하우스 식당에서 ‘No Meat’ 메뉴를 일부 실시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 하씨는 ‘No Meat’ 식단에 비건으로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말했다. 육수 등에 동물성 성분이 포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No Meat’ 음식에 작은 고기가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 

 

채식 식단 도입으로 나아가는 길

타대의 경우 채식 식당이나 채식 코너를 개설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해 왔다. 동국대는 2019년까지 육류를 사용하지 않고 생채소나 콩고기, 두부를 이용한 식단이 주를 이루는 채식당 코너를 운영했다. 서울시립대는 2022년 3월까지 매주 수요일은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 Day’를 진행했다. 성균관대에서도 5월12일부터 6월2일까지 매주 목요일 점심에 동물성 재료를 완전히 제외한 식단과 그렇지 않은 식단을 함께 제공하는 방식으로 채식 식단을 시범운영 하기도 했다. 영양사 이씨는 “매주는 힘들겠지만 한 달에 1~2번 정도 채식의 날을 정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학생 식당은 비빔밥에 고기를 빼달라고 요청할 경우, 고기 고명을 덜고 조미김과 같은 식품을 대신 제공한다. 채식인들은 단순히 육류를 덜어내는 방식이 아니라 채식 옵션을 보장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솔찬 부원 이혜인(문정·20)씨는 “기본 양념과 육수를 채식으로 제공한다면 채식인들이 주재료만 빼달라고 요구하기 쉽고, 영양성분을 자세히 표기한다면 채식인의 수고와 불안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채식 식단 도입, 다양성 존중의 첫걸음

채식 학식 도입 요구는 예전부터 지속돼 왔다. 본지는 2013년 이미 채식 식단이 제공되지 않는 문제를 보도한 바 있다. 솔찬 역시 2018년부터 채식 학식 도입을 위한 활동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현재는 2019년에 잠시 운영됐던 ‘No Meat’ 메뉴마저 중단됐다. 코로나19로 학생 식당 이용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모든 수업이 대면으로 진행되는 만큼 학생 식당과 기숙사 식당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지금보다 늘어날 것이고 채식에 대한 수요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많은 학생들이 채식을 선호한다”며 “그들의 식품 선택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채식 학식 도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말했다. 하씨는 “채식 도입이 누군가에겐 하나의 선택이 늘어난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채식인에게는 기본권 보장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채식 메뉴가 있는 것이 채식하는 사람들한테는 이 공간에서 식사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예요. 이 공간에서 내가 구성원으로 충분히 존중받고 있는지와도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학교 차원에서 노력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신선식품지수 : 신선어개(생선·해산물), 신선채소, 신선과실 등 계절 및 기상 조건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55개 품목으로 집계되는 지수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