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학 초반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이 너무 괴로웠어요.”

유채원(중문·18)씨는 2021년 여름 준비하던 인턴십에서 탈락하고 원치 않은 공백기를 갖게 됐다. 7학기 만의 휴학이었지만 간만에 가지는 휴식이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다양한 이유로 공백기를 가지는 대학생이 많지만, 만족스럽게 이 시기를 보내기는 쉽지 않다. 영미권에서는 대학 진학 전이나 취업 직전에 봉사, 여행, 인턴, 창업 등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며 앞으로의 진로를 설정하는 기간인 ‘갭이어(Gapyear)’를 갖는다. 19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갭이어는 2011년 기업 한국갭이어를 통해 우리나라에도 도입됐다. 본지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갭이어를 보낸 이화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출처=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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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달리기를 멈추겠습니다

진명기(영문·19)씨는 6학기를 마치고 진로 고민과 번아웃 증후군을 마주했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강박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기 위해 처음으로 휴학을 신청했다. 조은이(서양화·19)씨도 마찬가지였다. 1학년부터 잠을 푹 잔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아온 그는 점차 건강과 전공에 대한 확신을 잃어갔다. 재정비를 위해 휴학을 결정했으나 전보다 나태하고 게으른 삶을 사는 것 같아 한동안 우울함을 겪었다.

이들은 자신을 발견하고 작은 성취감을 쌓으며 조급함과 불안감을 떨쳐냈다. 조씨는 일러스트 작업, 웹툰 준비, 위빙 등 다양한 활동을 도전하며 얻은 성취감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게 됐다. 유씨도 학기 중 하지 못했던 운동과 독서를 하고 동아리 활동도 참여했다. 그는 “처음엔 뒤처질까 불안한 마음에 억지로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더 행복해하는 나를 발견했다”며 “남들보다 앞서가는 것보다 스스로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에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운동이 필요하다

전속력으로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속도를 늦추기는 쉽지 않다. 김은비(국문·21)는 “공백기를 가지며 자기 계발을 하고 싶지만 그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낼까 걱정돼 아직 휴학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큐 에세이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작가 김진영(영교·12년졸)씨는 “사회 초년생이 대학생 때 충분히 자기 일과 삶에 대해 고민하거나 쉬지 못하고 바로 커리어의 최전선에 나갔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번아웃 증후군에 빠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심한 번아웃을 경험하고 회사를 나와 갭이어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갭이어를 보낸 사람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엮어 책을 출간했다.

그는 “대학 시절 몇 차례 휴학하며 진로 고민을 충분히 했기에 사회 초년생 때 미래를 고민하는 데에 시간을 쓰기보다 일 그 자체에 충분히 몰두할 수 있었고, 거기서 오는 즐거움, 성취감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며 첫 커리어를 시작하기 전 본인이 잘하고 즐기는 일, 특히 피하고 일이 무엇인지 충분히 모색하기를 추천했다. “커리어 초반의 빠르고 단기적인 성취보다 방향성이 훨씬 중요한 것 같다. 뒤처질까 두려워 공백기를 갖는 것을 망설이지 말고 필요하다면 대학생 때 갭이어 혹은 갭모먼트를 가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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