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애프터 양(2022)

출처=영화 스틸컷
출처=영화 스틸컷

양은 미국인 부부가 입양한 중국계 여자아이 ‘미카’에게 중국에 대해 교육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입한 ‘문화 테크노 사피엔스’이다. 부부는 미카의 양육의 많은 부분을 양에게 의지하고, 양은 미카에게 정성을 쏟고 미카는 양을 오빠로 잘 따른다. 그러다 양이 작동을 멈추고, 양을 수리하려던 중 작은 기억 장치를 발견한다. 가족들은 매일 어떤 순간을 3초씩 녹화해둔 양의 기억을 살핀다.

영화는 가족들이 양의 수리 불가 상태, 즉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양을 추모하는 지를 보여준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After Yang’. 양 그 이후의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입학 후 첫 학기에 수강한 <청춘의 아픔과 치유: 행복인문학> 강의에서 박희규 교수님은 애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누군가를 잃었을 때,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슬픔에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다. 양의 기억 장치를 열어 사람의 기억과는 달리 왜곡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녹화한 기록인 그의 기억을 살피는 것. 양의 삶을 양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를 이해하는 것. 그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것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애도의 방식이다.

애도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가 장례식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특히 박물관에서 양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고, 그를 전시하는 장면은 마치 장례식의 발인 과정과 닮았다. 양이 떠나간 자리를 보며 인사를 하고, 양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 한 소절을 바치는 미카의 모습에서 어린 아이의 성장이 읽힌다. 양의 가족들은 그가 떠난 이후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특히 부모와 미카의 관계에서 부모의 역할이 재정비되어야 하는 상황이 그렇다. 영화는 그 과도기인 양의 장례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가족의 변화와 성장을 예고한다.

가족의 성장이 암시되는 이야기를 보며,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들이 피어올랐다. 이 가족 안에서 양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양은 이들과 가족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가. 양은 스스로 가족의 일원이라고 생각했을까. 미카에게 헌신하던 양과 양을 사랑하는 미카의 모습과 오프닝 시퀀스의 ‘Family of 4’ 댄스 대회에 참여하는 네 명을 보면 양에게 정이 많이 들고 가족 같다고 느낀다. 그러면서도 이 질문들에 쉽게 확답을 하기는 어려웠다.

시놉시스에 적힌 “무엇을 남기고 싶었어, 양?”이라는 문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양은 어떻게 남고 싶었을까. 나비 시퀀스에서 말하는 듯 양은 ‘무(無)가 있어야 유(有)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양은 언젠가는 ‘무’가 되길 바랐겠다고 생각한다. 제이크가 그를 되살리려 중심부를 열어보지 않았다면 양의 기억 장치도 연구되지 않은 다른 테크노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없던 것이 됐을 것이다. 양은 그가 가장 좋아한 노래, 영화의 OST이기도 한 ‘Glide’의 가사처럼 그저 하모니 속에 섞여 들어가는 멜로디가 되고 싶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양의 바람과 달리 양의 기억 장치는 가족들이 그를 추억하는 매개일 뿐 아니라 연구 대상이 됐다는 아이러니 역시 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든다.

최근 ‘파친코’의 공동 연출을 맡으며 화제가 된 코고나다 감독의 오랜 공부가 엿보이 는 애프터 양은 ‘아름답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영상미, 안드로이드인 ‘양’과 사람들의 서로 다른 기억 방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편집 방식 등 볼거리가 많은 영화이다. 하지만 나를 3차 관람까지 이끈 영화의 가장 강력한 힘은 많은 생각 거리를 던진다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영화는 계속 내게 깨달음을 주기도, 질문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머리가 복잡한 건지, 마음이 심란한 건지 헷갈리는 경험이 퍽 즐거웠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쯤 애프터 양을 보고 나와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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