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웅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이찬웅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철학, 예술, 과학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들뢰즈와 현대 프랑스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기계이거나 생명이거나』, 『들뢰즈, 괴물의 사유』를 썼고, 질 들뢰즈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엔조 파치의 『어느 현상학자의 일기』를 번역했다.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하고 동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뤼미에르 리옹2대에서 영화학 석사를, 리옹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 박사를 마쳤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고3일 때에는 학교 교실에서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것이 의무 사항이었고, 새벽 1시까지는 선택사항이었다. 해야 하는 대로 모두 같이 하는 것이 원칙인 지방 공립학교였기 때문에 자습 시간에 따로 학원에 가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일 년 내내 같은 책상에 앉아 교과서에서 참고서로, 문제집에서 모의고사로 쳇바퀴 돌 듯 하는 입시 생활이었다.

그중 기억나는 게 있다. 개인 수납장도 없는 낡은 교실에서 학생들의 참고서와 문제집들이 점점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쏟아져 나와 교실 바닥을 온통 뒤덮게 되었다는 것이다. 봄에는 막 고3이 된 수험생들의 각오처럼 수험서들이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을쯤엔 교실의 지박령들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기라도 하는 양 책들이 숲속의 젖은 낙엽들처럼 교실의 나무 바닥을 두껍게 덮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어 다니더니 나중엔 아예 책들을 밟고 다녔다.

그 긴장의 난장판 속에서 일 년 동안 내가 입시와 무관하게 읽은 책이 딱 한 권 있었다. 그것은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 번역서는 짙은 남색 표지를 하고 그 해 처음 출간되었다. 스티븐 호킹이 전 세계적인 스타 물리학자가 된 것이 이 책 덕분이었으니, 나로서는 그 이름을 알기도 전이었다.

이 책을 펼쳐보았던 것은 그저 제목 때문이었다. 시간에도 역사가 있다니, 이상한데…라고 생각했다. 야간 자습 시간에 버려진 책들의 우주 한복판에 앉아 이 책을 하루에 몇 페이지씩 야금야금 읽었다. 독서는 감춰둔 비싼 과자를 몰래 먹는 것처럼 기묘한 쾌감을 주었다. 그때 그 고등학생이 그 책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우주 발생을 다루는 물리학이라니, 사실 어느 정도 이해해야 잘 이해한 것인지, 그 기준 자체를 알기도 어려운 분야가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떤 한 사람이 불편하게 휠체어에 앉아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는데도, 그는 우주의 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정상인들’도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그는 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이 이상한 역전이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가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정말로 궁금했다.

이게 계기가 되어 물리학과로 진학해서 나 역시 우주물리학자가 되었다…고 말하면 단순하고 멋진 얘기가 되겠지만, 그 뒤 이야기는 사실 그렇지 않다. 중요치 않은 개인적 사정을 건너뛰자면, 그 뒤로 공학, 철학, 영화학 따위를 지그재그로 공부했다. 그리고 여러 학문 분야와 그것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이 있다. 언뜻 보면 철학, 과학, 예술은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분야들은 어느 높이 이상으로 올라가면 서로 수렴하고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언가를 보는 것이다.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하는 무언가를 보는 것이다. 그것을 ‘비전(vision)’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랭보는 질투를 일으키는 어린 나이에 영원히 남을 만한 멋진 말을 말했다. 그는 열일곱의 나이에 시인이 되려는 자기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제 자신을 투시자(voyant)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 모든 감각의 착란을 통해 미지에 도달해야 합니다.” 철학은 개념을, 과학은 함수를, 예술은 감각을 통해 각자의 방식으로 산에 오른다. 하지만 어느 높이의 구름을 뚫고 올라가면 이 활동들은 공통적으로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일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착란 같은 것을 불러일으킨다. 이곳에서 저곳을, 지각에서 기억을, 현재에서 미래를, 현실성에서 잠재성을, 현상에서 법칙을 함께 보기 때문이다.

격렬한 열정에 사로잡혔던 젊은 시인은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그[시인]가 저편으로부터 가져온 것에 형체가 있다면 형체를 부여하고, 형체가 없다면 형체 없음을 부여해야 합니다. 하나의 언어를 찾아낼 것.” 자, 그러니 대학에 쌓여 있는 많은 책 중 마음에 드는 몇 권의 도움을 받아 이런 일을 해보자.

이찬웅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글에서 언급된 도서

스티븐 호킹,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김동광 역, 까치, 2021

아르튀르 랭보, 『랭보 서한집』, 위효정 역, 읻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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