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날 아침도 분주하게 아침 준비를 마치고 막 나가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다급한 엄마의 목소리다.

남동생이 교통사고를 당해서 응급실에 잇다는 내용이다.

평소에 어머니가 아이를 돌봐 주셨기 때문에 그날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 있어야만 했다.

집에서 초조하게 동생의 소식을 기다리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당장 내일부터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걱정되었다.

저년 내내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별 뾰족한 대안이 없었다.

다음날 오전, 수업에 참여할 것인가 아니면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양해를 얻어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과사무실에 있는 조교들이 아이를 돌봐 줘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참으로 막막했다.

게다가 아니는 감기까지 걸려 콧물이 나고 있었다.

그 다음날은 하루종일 강의와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남편이 하루 휴가를 내 그 날도 간신히 넘겼다.

남동생의 사고는 12주 진단이 나왔다.

어머니는 당분간 병원에 계셔야 할 것이다.

이제 안정적으로 아이를 맡길 방안을 강구해야한다.

동네에 잇는 탁아소 다섯 군데를 돌아보았는데 18개월된 아이를 받아주는 곳은 딱 한곳이었다.

그나마 보육비에 비해 시설은 과히 좋지 않았다.

사립 탁아소보다는 관립 탁아소가 그나마 조금 낫지 않을까 하느 닉대에 구청에 전화를 걸어 탁아소에 대해 문의를 해보앗으나 우리 동네에는 탁아소가 없다고 했다.

탁아모가 집에 와서 돌봐주는 가정 탁아를 알아보니 우리 집의 경제 형편으로는 어림도 없이 비싸다.

아이의 감기는 더욱 심해지고 어떻게 해야 할 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잇다.

이 짧은 기간동안 나는 아이가 있는 여자가 직장을 다닌다던가 또는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셔서 항상 죄송한 마음과 빚지는 심정이었는데 이나마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겪었던 그 막막함은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얼마나 불안정한 구조인지를 다시한번 곱씹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아이의 양육은 각 개별 가정에서 책임져야 할 몫인가? 그렇다면 여성들의 사회 활동 참여는 어떻게 가능할 수 있다는 말인가? 국제화·세계화가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여성들의 삶은 이전과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데 대한 인식과 그 해결을 위한 출발은 우리가 서 있는 이곳에서부터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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