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나의 해방일지(2022)

출처=JTBC
출처=JTBC

‘살면서 마음이 정말로 편하고 좋았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프로그램 정보의 첫 문장은 우리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현대인들은 종종 지나친 강박에 시달리고는 한다. 하루를 알차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과 끊임없는 경쟁,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압박을 견디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을 돌볼 시간은 사라져 버린다. 이런 삶은 현대인에게 ‘평범한 삶’이다. 답답하고 벗어나고 싶은 일상이지만 그것이 평범한 일상이 돼버린 사회에서 우리는 타협하고 순응하며 살아간다. 이런 삶 속에 행복이 자리할 리 만무하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을 위해 행복을 미루고는 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 변두리에 사는 삼 남매와 그 주변인들의 일상을 그린다. 첫째 기정, 둘째 창희, 셋째 미정은 서울로 통근을 하고, 주말에는 부모님의 밭일을 돕기도 한다. 그들은 얼마 남지 않은 동네 사람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서울에서의 삶을 동경하고 동네에서의 삶을 지루해한다. 겉보기에 이들의 삶은 너무나도 평범하다. 그러나 이들은 저마다의 괴로움을 안고 살아간다. 금전적인 문제, 대인관계, 직장생활, 사랑, 그리고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답답함까지 이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다양하다. 어느 날, 평범하던 이들의 삶에 ‘구씨’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세 남매는 구씨로부터 삶의 비관부터 희열, 추앙까지 다양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을 괴롭게 하는 것들로부터 ‘해방’에 도달한다.

지지고 볶는 집착적 사랑에서 해방하고 비로소 이해를 기반으로 사랑하는 기정. 쳇바퀴 같은 업무와 승진의 압박에서 해방해 스스로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아가는 창희. 텅 빈 관계들에서 해방해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운 미정. 그들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았지만 분명 무엇인가 그들 안에 새로이 채워졌다.

현대인의 모습을 가감 없이 그려내면서도 해방에 도달했다는 카타르시스를 표현했기 때문일까. <나의 해방일지>는 중심이 되는 큰 사건 없이도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했다. 해방된 삼남매는 거시적으로 볼 때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한 명 한 명의 마음 안에 자리잡은 사랑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일상 속에 조그마한 사랑의 자리를 마련했을 뿐인데, 그들의 일상이 훨씬 채워진 것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나의 해방일지>는 종종 인물의 이기적 내면과 공허한 심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미정이 다짜고짜 구씨를 찾아가서 자신을 추앙하라고 하는 장면, 창희가 직장 동료를 미워하던 마음을 구씨의 고급 외제차를 운전하며 없애버리는 모습이 그러하다. 이러한 연출은 인물들의 가장 민낯을 보는 것 같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면서 묘한 공감을 자아낸다. 그것은 아마 굳이 꺼내어보지 않던 깊숙한 감정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생각해 본 이기적인 감정과 경험할 수 있는 공허함을 끌어내는 대사와 연출, 그리고 그것을 잘 살려낸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 시청자들은 너무도 사실적인 감정을 느낀다. 또한 자신의 민낯을 모두 드러냈던 인물들이 충만해진 모습은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 또한 충만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게 한다. 이야기하다 보니 고작 20년 남짓한 짧은 인생을 살아온 내가 이토록 깊이 인생을 논하는 드라마를 평가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해방’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통해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만의 ‘해방’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든다. 잠시 나를 정의하는 무수한 것들을 떠올려보자. 그중 무엇이 나를 옭아매고 있는가? 그중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가? 내 안의 진솔함을 꾸밈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시간, 장소, 주변인 그 무엇 하나라도 곁에 있다면 우리는 해방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워낸 굴레들을 특별한 마음들로 채울 때, 우리는 삶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지 않은 사랑으로 채워나가자.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에서 종종 우리의 마음이 정말로 편하고 좋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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