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케어슬림’시음회 <공짜음료수에 팔리는 대학공간> 균형미인은 위한 건강미용식 ‘뉴케어 슬림’ 저번주 친구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려고 찾은 학생식당 앞에서 ‘뉴케어 슬림’이라는 음료수 시음회가 진행되고 있었다.

친구와 난 공짜라는 생각에 무턱대고 받았지만 음료수 캔과 팜플랫을 본 순간 그리 유쾌하지만 않았다.

‘너 배만 볼록 나왔지?’,‘그렇다고 숨 안 쉴래?’,‘굶는다고 그게 빠질 것 같애?’등등 팜플랫을 가득 채운 여성비하적인 표현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지만 어떻게 시음회가 버젓이 캠퍼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식권판매기 옆 현관문에는 보험상인 등 잡상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이 붙어있다.

잡상인의 기준이 무엇이길래 ‘뉴케어 슬림’시음회는 열릴 수 있었던 것일까? 어차피 상품소개나 물건을 팔겠다는 목적은 다들 같은데 말이다.

이제 우리에겐 이동통신 선전과 각종 음료수의 시음회 등이 어느새 일상화 돼가고 있다.

그러나 이화교만 건너가면 학생이 아닌 손님이 되고 마는 상황에서 학내에서가지 상업문화를 접해야 한다는 현실은 한숨만 나오게 만든다.

앞으로 학교측은 어러한 시음회 등을 더이상 학교안에 방치하지 말았으면 한다.

공짜음료수가 좋긴 하지만 난 대학공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미경(불문·2) ◆법대소모임 사법감시단 <발로 뛰며 배우는 법률> “사법감시단? 그게 뭐지? 법을 감시하는 거야? 이름부터가 좀 낮설은데” 우리가 자주 들어오던 일반학회나 동아리와는 다른 이름. 지금까지 법대의 소모임이었던 사범감시단이 이번 학기부터 학과를 초월하여 이화인이란 누구나 입회가 가능한 단체로 거듭난다.

사범감시단은 1995년말 법학과가 법정대에서 분리되어 단독으로 법과 대학이 되었을때 처음 만들어졌다.

그후 지난 2년간 여러가지 활발한 활동을 벌이며 자리를 굳혀왔다.

우리는 지난 학기까지 법원을 돌며 여러 재판을 방청하고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의 의견을 개진해 적절치 못한 법관의 태도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묘니터 활동을 주로 해 왔다.

그리고 국회의 의정감시 활동을 참여연대와 공동으로 하기도 했다.

또한 서울대의 인권 동아리 ‘사람세상’과 함께 친분을 돈독히 하여 함께 인권에 대해 심각하게 논의하기도 했고 ‘인권운동 사랑방’에 참여하여 한국사회의 미래모습을 점쳐보기도 했다.

그리고 사법시험에 대해 간담회를 갖고 참여연대 한분과 야외토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활동들을 조금 접어두고 앞으로는 좀더 많이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이번 학기에 우리는 법원, 감사원, 헌법재판소, 국회도서관, 교도소 등을 방문하여 수업시간에 배웠던 법률적 지식이 적절히 실무에 어떻게 이용되는지 알아보고 수업시간에 언급되지 않았던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자 한다.

기관을 방문하기 한 주 전에는 우리가 가야할 곳에 대해 이론상으로 배워보고 역사적인 사건이나 영화를 통하여 법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그리고 연말에는 우리의 활동을 담은 신문을 만들어서 많은 이화인들과 98새내기들에게 우리 사법감시단의 활동들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사법감시단과 동참하고 싶은 이화인들에게 법학과방은 언제난 열려있다.

교과서 밖을 탈출해보고 싶은 사람, 행동하는 사람과 함께 이번 학기에도 사법감시단을 알차게 꾸려나가고 싶다.

노수미(법학·2) ◆한보비리 관련 국회위원 출감을 보며 <가을하늘같은 정치판을 꿈꾸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나를 기분좋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가을하늘이다.

교과서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높고 코발트빛가을하늘. 더군다나 요새같이 취업대란이니 전노사면이니 하는 온통 열룩진 소식으로 일상생활을 맞이하는 나로선 가을하늘의 청량함이란 신의 축복이다.

그러나 이것마져도 잇아가는 일이 며칠전 일간지를 통해 발생했다.

온 국민을 경약케 했던 한보비리 사건의 결말이 어처구니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온 국민을 가장 분노케 했던 것은 정태수의 굳게 닫힌 입만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등에 진 국회의원들이 그 돈을 유유히 받아먹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인물들이 특별사면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유히 철문을 나오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현실을 보니 자본주의 국가는 필연적으로 자본의 논리와 그를 움켜쥔 자의 억시아는 과거 어느 정치 경제학자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당의원 몇몇이 그 사건에 연루됐던 것에 매우 불쾌해하던 여야 국회의원들이 지금은 “올바른 처사”라며 이를 찬성하고 있다.

이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과 같다.

이제 곧 다가올 대선에 누구를 찍을 것인가는 명확해진다.

답은 “없다”이다.

국민은 기억 상실증에 걸린 병자마냥 항상 잊어줄 거라는 생각에 또다시 거대 자본의 리베이트를 낼름 받아벅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늘 뒤통수만 맞아대는 국민들. 우리들은 또 이럴줄 알았다 하면서 가을하늘의 날벼락을 내년이고 그 다음해이고 계속 맞기만 할 것같다.

우리에겐 희망은 가진 자와 강한 자의 세상 바깥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변우회(사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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