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파친코(2022)

출처=애플TV+
출처=애플TV+

“이 이야기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견뎌냈다. ”

2022년 제작비 약 1000억 원의 블록버스터 드라마 <파친코>의 마지막 대사는 8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된다. 이 대사는 ‘여성’이라는 부분과 ‘견뎌냈다’에서 잔잔한 울림을 주게 된다.

<파친코>는 식민지 시절부터 20세기 말까지, 한민족이 겪었던 디아스포라를 4대에 걸친 한 가족의 일대기로 풀어낸다. 중심인물 ‘선자’의 어린 시절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모습을,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에는 일제 강점기 재일 교포들의 생활을, 손자 솔로몬의 일화를 통해 해방 이후 재일 교포들의 삶을 그려낸다. 차분한 어조로 말하듯, 드라마에서는 식민지 시절 조선인들이 겪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자극적인 연출을 하지 않았음에도, 난세의 영웅이 등장하는 신파극이 아님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시대를 견뎌내는 모습은 많은 이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파친코>에는 여러 여성 인물들이 등장한다. 드라마 포문을 여는 것도, 드라마의 서사를 이끄는 것도 여성 인물들이 중심이 된다. 주인공 ‘선자’의 어머니 ‘양진’은 조선시대 여성의 지난한 삶과 일제 강점기의 고통스러운 한민족의 삶을 모두 대변한다. 자식과 몸이 아픈 남편을 매일같이 뒷바라지하며, 남편이 죽은 후엔 홀로 선자를 키워내고 하숙집 운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야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녀는 이러한 고난들을 오롯이 견뎌낸다.

그녀는 자식인 선자에게도 매정해 보이지만, 선자가 일본에 가게 됐을 때 그녀가 가진 딸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방곡령으로 쌀을 구하기 힘든 처지에도 자식에게 고향의 쌀로 지은 밥 한 끼를 먹여 보내기 위해 쌀을 구하고, 떠나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씩씩하게 이별하지만, 뒤에서는 자식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홀로 삼킨다. 이렇듯 <파친코> 속 양진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고, 이를 표현할 수 없었던 조선 여성들의 고난을 상징한다.  

주인공 선자 역시 어머니의 강인함을 이어받았다. 손자 솔로몬에게 이야기했듯, 그녀는 ‘자신을 반으로 쪼개어 살 수 없다’는 올곧음을 지녔다. 비록 한수의 꾐에 넘어가 부정을 저지르긴 했지만, 선자는 자신의 아이를 떳떳하게 키우고자 했고, 이는 그녀가 일본으로 건너가 사는 계기가 된다. 일본에서의 삶 역시 조선인에게 차가운 사회적 현실과 아주버님의 가정 폭력으로 녹록지 않았지만, 선자가 추구하는 올바름의 가치를 지켜내며 타지에서도 강인한 생활력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외로운 타지에서 선자에게 가족이 되어 주었던 ‘경희’라는 인물 또한 양갓집 규수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일본에서의 어려운 삶을 웃으며 견뎌내는 모습을 보이고, 솔로몬이 땅을 팔라고 요청했던 할머니 역시 타지에서 차별받았던 설움을 견뎌내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간직한 강인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여성 캐릭터들은 수많은 사람을 구하는 히어로의 위치에 있지도,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업적을 쌓지도 않았다. 하지만 식민지를 겪는 민족적 아픔과 부유층이 아닌 가난한 처지에서 오는 어려움, 또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정과 사회에서 겪는 삼중 고통을 고스란히 버텨낸 그들의 삶은 실로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인내하고 버텨서 결국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에게서 작은 미소를 짓는 여유를 후에 발견할 수 있다. 그 시절과는 비교가 되진 않겠지만, 여전히 많은 시련을 앞에 두고 있는 여성들이 <파친코> 속 여성 캐릭터들처럼 힘든 시기를 견뎌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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