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명희교수 추도사

사랑하는 선생님! 선생님의 영정앞에서 저희들은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어찌 그리 일찍 저희 곁을 떠나시는지요? 젊은 저희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하셨던 선생님게서 이처럼 말없이 누워 계시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저희 곁을 떠나가시지만, 저희 마음에는 언제나 잊을 수 없는 선생님으로 남아계십니다.

크신 능력과 넓은 포용력을 지녔던 선생님께서는 참으로 여장부셨습니다.

샘솟듯이 솟아나는 아이디어를 추진하셔서 완성품을 만드셨던 선생님! 그런 선생님의 능력과 노력의 결실은 학교 곳곳에, 그리고 우리 교육에 스며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어떤 일에든지 도전해 가능한 일로 만드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사범대학장 협의회 회장직을 맡아, 40년간 지속돼 온 국·사립 사범대학 차별을 철폐하는 중대한 성과를 얻어내셨습니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입학처의 토대를 세우고 발전시켰습니다.

전국을 순회하며 하신 선생님의 명강연은 여학생들에세 이화인이 돼야할 필연성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리고 1984년 우리나라 최초로 이화여자대학교에 평생교육원을 개원하는데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습니다.

예순이 다 되신 연세에 학교에서 밤을 지새우리고 하셨고 발을 다쳐 입원하시게 되자 병원에서 팩스로 업무를 보시기도 하셨던것을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학교를 위한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지 앞장서서 고된일도 즐겁에 하곤 하셨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생님은 스승으로서 저희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에 희망과 열정을 불어 넣어 주셨고 저희들의좁은 시야를 현장으로 확대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따라 특수학교, 평생교육기관, 연구기관, 학교현장 등으로 찾아갔던 우리는 인간 하나하나의 중요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대담한 모습 뒤에 선생님은 너무도 부드럽고 자상한 일면을 가지고 계셨죠. 사람들간의 화합을 위해 언제나 힘쓰셨던 선생님, 행여 남에게 상처될까 노심초사 하신 선생님께서는 자신의 고됨은 홀로 삭히셨습니다.

그렇게 삭히신 것들이 병으로 된건 아닐지 부질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입원 며칠 전까지도 후배와 제자들을 위해 그 편찮으신 몸으로도 저녁을 사주시며 격려하시던 선생님, 일에는 철저하셨고 때로는 야단도 치셨지만 어려운 처지에 달하면 친정어미니와 같은 자상함으로 저희를 배려하곤 하셨지요, 이제 우리는 그러한 격려와 지도를 어디서 받아야 할지요? 선생님! 선생님의 그 사랑과 포용력을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저희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계신 선생님, 부디 편안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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