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에는 아무나 사랑할 거야. 정말 아무나.” 최근 즐겨 보고 있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속 염기정 캐릭터가 연신 내뱉는 대사이다. 나의 경우를 한번 생각해봤다. ‘나는 정말 아무나 사랑할 수 있을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최근의 연애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 제대로 된 연애는 처음이었기에 모든 감정이 어색했다. 만난 지 세 번째 되던 날, ‘이쯤이면 고백할 타이밍인데’라고 생각하는 순간 한 치의 오차 없이 상대방은 사귀자고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남들 다 하는 연애, 나만 안 할 수는 없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시작했던 연애는 예상보다 평탄하게 흘러갔다. 여느 대학생 커플처럼 맛집 데이트를 즐겼고 자기 전에 전화도 자주 했다. 직접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상대는 나에 대한 꾸준한 애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문제는 나였다. 나의 일상이 바빠지자 제일 먼저 놓게 되는 것이 사랑이었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시간을 내어 얼굴을 보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졌고, 얼굴을 보면서도 좋다는 감정보다 밀린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애정이 줄어들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비교’다. 나는 100점짜리 사람인 것 같은데, 상대방은 80점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이 보일 때마다 그 점수는 쭉쭉 하락한다. 또한 내 주변 사람들과 상대방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점수는 다시 상승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애초에 답이 정해져 있는 비교이기 때문이다. 상대도 변화를 느낀 낌새였다. 자연스럽게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고, 상대방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치를 하락시키지 않을 상대방을 고르는 것은 건강한 사랑에 있어 중요한 요소이다. 하지만 그렇게 비교만 하다 보면, 결국 상대방을 끊임없이 평가하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이 사람은 이게 별로고, 저게 부족하다고 하면서 사람을 능력주의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관계에서도 이기적인 마음을 갖기 쉽다. “내가 너한테 해준 게 얼마인데, 너는 그것밖에 못 해줘?” 연인끼리 싸울 때 항상 하는 말이다.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뒤늦게 상대방에게 사랑을 돌려받으려고 한다. 내가 준만큼 똑같이 받으려고 기대하지 않는 것,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 그런 사랑이 제일 어려운 사랑이다. 기대하지 않으려고 해도 기대하게 되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줘도 고갈되지 않을 만큼의 충분한 양이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사랑으로 채울 마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타인에게 애정을 주기란 불가능하다. 언제 행복감을 느끼는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주로 하는지 등 스스로 관심을 충분히 기울일 필요가 있다.

참고가 될까 싶어 내가 나를 아끼는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첫 번째, 어떤 분야에서든 ‘나만의 방식’을 찾는다. 사실 이건 굉장히 광범위한 주제이다. 예를 들어 읽고 싶은 책이 있다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여 읽을 건지 혹은 서점에서 구입해서 읽을 건지 결정하는 일이다. 나는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을 옆에 메모하거나 인상 깊은 구절을 바로 책에 표시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서점에서 직접 구입하여 읽는 편이다. 작가와 토론하는 느낌도 나고, 그렇게 읽으면 나중에 기억도 잘 나기 때문이다. 반대로 표시하면서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여 읽을 수 있고, 휴대성을 중요시한다면 전자책을 활용할 수도 있겠다. 더 깊게 들어가면 어디에서, 무슨 시간에 독서하는 게 좋은지도 살펴볼 수 있겠다.

두 번째, 하루에 한 번은 무조건 외출한다. 이게 왜 자신을 아끼는 방법이 되는지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원칙은 ‘어떻게 휴식하는 것이 제일 좋은가?’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현재 좁은 원룸에서 살고 있기에 집에 있으면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다. 또한, 요즘 학교 앞에 공사 현장이 많아 집에 있어도 조용하지 않다. 그래서 나갈 일이 없더라도 주변을 산책하러 나가거나 가고 싶었던 카페를 찾아가는 편이다. 우울감과 몸이 무거움을 느낄 때는 더더욱 필사적으로 외출하려고 한다. 집에만 있다가 자기 혐오감을 느끼는 날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친구는 쉬는 날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어떤 방식이든지 자신에게 제일 잘 맞는 방법으로 쉬면 된다. 이처럼 우리의 행동에는 각자의 취향과 특성이 녹아 있다. 좋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선택하길래. 이런 말을 한다면 자신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않은 것이다. 사소한 결정에서 나만의 방식을 고민하다보면,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생긴다. 실패하더라도 내가 결정한 것이니 후회가 덜하고 떳떳하다. 이러한 자기 확신은 자존감과 자신감의 훌륭한 밑거름이 되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게 해준다.

이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 것 같으면, 대가를 바라지 말고 누군가를 사랑해보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어도 좋다. 나의 목표, 꿈처럼 추상적이어도 좋다. 설렘, 기쁨, 좌절, 슬픔, 뼈를 깎는 듯한 고통.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다 보면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무너져도 좋으니 우리 모두 사랑을 주기 위한 여정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그건 곧 나를 위한 여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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