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만큼 부담스러운 날이 또 있을까? 새벽 12시가 되는 순간, 안 보려고 노력하던 핸드폰이 저절로 보기 싫어진다. ‘연락이 왔을까 안 왔을까. 연락이 하나도 없으면 어떻게 하지?’ 등등 걱정이 앞선다. 왜냐하면 생일은 지난 1년 동안 내가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었나 검증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애써 외면하다 핸드폰을 집어 잠금화면을 열어보았을 때도 문제다. 주변 사람들의 축하 연락을 읽어버리면, 편지 같은 답장을 줄줄이 써서 보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선물에도 쇼호스트 같은 반응이 답장에 깃들어있어야 한다. 이렇게 연락이 온 사람들한테는 안도감과 다음 생일에도 비슷하게 챙겨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공존한다. 예수도 부처도 아닌 나의 날이라 신났던 생일이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우선, 나는 생일의 굴레로부터 탈출하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누군가가 생일을 물어보면 2월 31일이라고 답하며 살고 있다. 주변에 생일을 말하지 않아 축하를 받지도 축하를 해줄 필요도 없는 상태가 되기로 한 것이다. 생일은 이처럼 원하지 않는 신비주의까지 감행할 정도로 아이러니한 점들이 있다.

첫째는 생일은 과연 축하해야 할 즐거운 날인가라는 아이러니다. 나는 인간의 출생이 태초부터 부조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고난을 겪는다. ‘난 태어나서 행복하다, 낳아주신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생각은 접어두고 다시 생각해보자. 누가 당신이 태어날 때 “출생을 원하십니까?”하고 정중히 물어봐 준 다음에 태어났는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물어봐 준다면 그 무엇으로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 2n 년간 살면서 좋은 날도 많았지만 무시할 수 없이 힘들고 아픈 날도 많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선택권을 준다면 아무 고통 없는 무의 상태를 원한다. 이렇듯 태어난 것이 그렇게 기쁘지 않은 나, 그리고 나와 분명히 비슷한 감정을 겪고 있을 사람들에게 과연 생일은 축하할 날이 맞는가 싶다. 오히려 같이 술잔을 기울이며 태어남을 위로해주어야 한다.

아이러니한 두 번째 점은 주변인과의 관계를 해치는 생일선물 문화다. 생일 선물을 받으면 상대방의 생일날에 똑같은 가격대의 선물을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가격대가 너무 차이가 나는 선물이거나 선물을 주지 않으면, 관계의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터넷 검색 창에 ‘생일선물 먹튀’라는 검색어만 찾아보아도 분노와 서운함이 섞인 사연들이 많다. 남들에게 말 못하고 굳이 인터넷으로 글을 써 한풀이를 하는 것은 남들에게 토로하면 찌질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일선물을 주었지만 축하받지 못하는 일이 특정인에게 2~3년씩 반복되면 다른 점이 잘 맞고 잘 지내는 친구더라도 관계가 멀어진다. 생일 선물이 주변인과의 인맥을 다지고 친분을 유지하는 기능이라면, 잘 해봤자 본전인 생일 문화가 없어지는 것이 오히려 좋은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세 번째는 비효율적인 선물 방식이다. 우리는 비슷한 가격대의 생일 선물을 주기 위해서조차도 많이 고민한다. 이런 고민을 줄여주기 위해 유튜브에는 가격대별로 선물을 추천하는 영상들이 즐비해 있고, 카카오톡에는 바쁜 현대인을 위해 생일선물 추천카테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세상이 생일 선물을 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만들었음에도 선물 주기는 쉽지 않다. 선물을 고르다 보면, ‘굳이 힘들게 정신적인 노력을 더 하면서 동일한 가치의 선물을 교환하는 것이 유의미한 것일까’라는 회의감이 든다. 차라리 각자가 선물 줄 돈으로 본인이 필요하고 원했던 것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선물 때문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일도 없으니 말이다. 참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마지막은 생일이 되면 원하지 않는 선물이 쌓이는 슬픔이다. 상대방의 취향에 대한 무지와 어떻게든 비슷한 가격대로 선물을 쥐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건넨 선물들은 골칫거리가 된다.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 상품(제발 라이언), 무드등, 탄생화 상품(나는 내 생일이 되어서야 나의 탄생화가 해바라기인지 알게 되었다)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스타벅스 기프티콘이면 횡재다. 애정이 어리지 못한 선물이라고 느낄 수 있으나 오히려 필요 없는 물건들을 선물 받은 것보다는 훨씬 감사한 일이다. 원하지 않는 선물은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 버리기도 어렵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생일 선물을 받으면 상대방 몰래 중고 거래 시장에 가격을 낮추어 판매하기도 한다. 준 선물의 가격보다 더 낮은 가치의 현금을 얻는다. 생일에 받은 선물에 괴로워하고 이를 처분할 생각이 먼저 드는 것 또한 생일의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은 고귀한 일이라 생각한다. (생일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생일로 인해 파생된 기이한 문화들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생일은 다른 의미여야 한다. 태어나고 싶지도 않았는데 불구하고 세상에 나와 억울한데 힘든 일까지 겹경사로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라 느낀다. 그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세상에 나와 같이 고난 길을 겪고 있는 친구에 대한 위로와 그의 존재로 저주 같은 삶을 버티며 살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표현이 진정한 생일 축하라 생각한다. 생일 문화 혐오자이지만, 생일을 축하해주고 선물을 건네고 싶은 주변 얼굴들이 몇몇 떠오른다. 당신에게는 지금 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얼굴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생일은 만족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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