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한된 소득으로 가장 큰 만족을 얻기 위한 경제적 행위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소비는 욕망과 취향, 나아가 문화자본의 획득을 둘러싼 투쟁으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가로지르며 한 사회의 문화적 가치나 권력구조 등이 반영된 사회문화적 행위이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젠더와 소비 이슈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여성은 생산영역에서 배제되어 온 만큼이나 소비영역에서도 왜곡된 시선에 시달려 왔다. 1990년 중반 처음 등장한 ‘된장녀’는 이후 ‘신상녀’, ‘명품녀’, ‘귀족녀’ 등의 호명으로 확장되며 ‘사치스럽고 ’무절제한‘ 여성소비자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문화소비자로서 여성은 ’성별화‘된 문화영역에서 진지한 관객으로 대우받지 못한 채 취향은 폄하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기까지 한다. 사실 여성의 소비행위 및 여성소비자에 대한 비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920년대 등장한 ‘모던걸’은 자본주의적 소비 욕망을 표출하고 젠더 규범을 일탈했다는 지점에서 남성 지배담론의 비난을 받으며 ‘못된걸’로 등가화되었다. 그리고 ‘못된걸’로 낙인찍힌 ‘모던걸’은 21세기 ‘된장녀’로 부활한다. 거의 한 세기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모던걸’과 ‘된장녀’는 너무 닮아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패션, 미디어, 도서, 외식, 공연, 금융 등 시장 전반에서 트렌드를 주도하고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여성소비자의 구매력을 예찬하면서 여성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위해 여성소비자의 특징과 니즈를 분석하는데 열을 올린다. 문제는 그 결과들이 하나같이 고정관념에 근거한 성차별적 내용이라는 점이다. 성역할 고정관념 및 성적 대상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고 여성을 젖소로 비유하는 등의 무수한 여성혐오 광고들에서 여성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도 여성소비자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로 여성의 고용률이 증가했다거나 직장 내 여성관리자 비율이 상승했다는 등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향상되었다는 점을 내세우지만 성별 고용률, 비정규직 노동자 비율, 저임금 노동자 비율은 여전히 성별 격차가 심하며 민간기업 및 공공기관 여성관리자 비율은 20% 내외, 상장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5% 내외임을 고려하면 이 지표들은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구조적 불평등을 보여주는 수치일 뿐이다.

여성의 소비행위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주목해야 이유는 이것이 여성소비자에게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파급효과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여성들은 자신의 소비행위가 어떻게 비춰질 것인지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 또한 여성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정형화하여 여성소비자 내부의 다양성을 무화할 뿐 아니라 여성의 사회적 약진을 단편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집단으로서의 여성의 취약성은 비가시화된다. 무엇보다도 한국 사회에서 실제 여성의 삶과 현실을 은폐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남녀 고용률의 차이, 남녀 임금 격차, 견고한 유리천장, 남녀 가사노동시간 차이, 결혼 및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등 한국 사회 여성소비자의 지난한 삶의 현실이 가시화되지 못하고 ‘소비적’ 여성, 그것도 ‘나쁜’ 여성으로 재단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성의 소비행위 및 여성소비자에 대한 왜곡된 시선에 대해 여성소비자의 문제 제기는 늘 있어 왔지만 2015년 이후 리부트된 페미니즘은 젊은 여성들의 일상적 소비행위에 전방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해시태그를 통한 여성혐오기업 불매운동부터 여성친화기업에 대한 구매운동, ‘탈코르셋’, ‘여성소비총파업’ ‘문화방해 culture jamming’ 등 여성소비자들에게 소비는 페미니즘이라는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고 있다.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가졌음에도 소비자로 존중받기보다 여성으로 차별받는 사회에서 소비자로서의 정체성이 페미니스트라는 또 다른 사회적 정체성과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여성의 안전 이슈에서부터 여성차별 광고나 마케팅, 기업 내 성차별, 채용 차별, 성 상품화, 사회적 소수자 차별 이슈, 그리고 환경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쟁점들에 개입하여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기업의 사과를 받아내기도 하고 적절한 후속 조치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기도 한다. 그리고 해당 문제를 이슈화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기업의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혹자는 여성소비자 및 여성의 소비행위가 상품 페미니즘이나 펨버타이징 등 새로운 마케팅 프레임으로 흡수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정치적 소비행위가 페미니즘이나 성평등으로 바로 환원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소비문화 안에서 소비자로서 여성주의적 의제를 계속 생산해내고 쟁점화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구매하고 구매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가장 강력한 소비자의 사회 참여 행동이 될 수 있다. 이슈 중심의 개별화된 소비자의 일회성 행위일 뿐이라고 냉소할 것이 아니라 시장 메커니즘을 더 치열하게 분석해야 한다. 구체적인 성과가 금세 보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소비자로서, 우리 마음속에 자리한 변화의 열망이야말로 가장 결정적이고 본질적인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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