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학기 이화여대 대학원 지역연구협동과정에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인사들을 외래강사로 초빙했다.

그 일환으로 외교관인 본인에게도 출강의 요청이 왔다.

평소 대학 강단에 선 것을 대사직 다음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해오던 터라 나는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엿다.

1주에 한번 출상, 유럽의 역사와 문화·대외관계 등을 중심으로 강의했다.

금번 학기에는 외무부 보직도 수행하랴, 매주 토요일 나가는 코리아 헤럴드 영어칼럼도 집필하랴, 어디 출강같은 것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더더욱 누가 출상요청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뜬금없이 개학을 며칠 앞드고 이대 대학원에서 다시 내게 강사의뢰가 왔다.

국제정세분석론을 맡아달라 햇다.

3시간을 거의 가득 채워가며 강의는 했지만, 사실 이번학기 강의는 준비도 내용도 건성으로 하다시파한 부분이 많아 내심 학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비가 심히 내린 13일(화) 나는 학생들에게 큰 죄를 지은 심정으로 30분이나 늦게 강의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왠일인가?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전체학생들이 환히 웃는 얼굴로 무슨 축가를 불러주는 것이 아닌가. 예기치 않은 일에 당황한 나는 여자대학이라 감수성 깊은 학생들이 오늘을 내 생일로 착각하고 축가를 부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선물도 책상 위에 예쁘장하게 놓여있었고, 그 위에 주홍빛 카드도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가 제법 길었고 ‘해피 버스데이 투유’가 나오지 않았다.

영문을 몰라하는 나를 보고 학생들은 노래가 끈나자마자 까르르 웃으며, “교수님, 15일이 스승의 날이지만 교수님 시간이 오늘이라 미리 앞당겨 저희들 마음을 표시합니다”고 합창했다.

13명의 학생들이 각자 자필로 쓴 카드 속 글들은 이러했다.

“교수님, 항상 저희들에게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좋은 말씀해주시고 보살펴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교수님의 삶의 가치관을 존경합니다”,“비가 무척 많이 내리고 잇습니다.

저희가 교수님을 존경하는 만큼요...”,“교수님 수업 이번이 처음인데 너무 알차게 잘 듣고 있습니다.

항상 지적인 지식과 또 각끔은 밝은 웃음을 저희들에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제정세 뿐만 아니라 인생의 아름다움을가르쳐 주시는 교수님... ”“교수님, 스승과 짜의 인연이 오랫동안 계속되었으면 좋겠네요”등등... 이들의 짤막한, 그러나 여운 긴 언어들을 읽어가며 나는 감격과 자괴에 휩싸였다.

시간강사에 부로가한 내게 이런 마음들을 표현하다니...이런 대접을 받으려면 몇십년 교단에 서서 이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해야만 가능한 것아닌가. 집에 와서 학생들의 카드 내용을 다시 읽으며 곰곰히 생각해 봤다.

고우하기 싫은 것은 학생들이 아니고 교수들이었다.

3시간 수업을 지겨워하는 것은 밑천 없는 교수들이었지 학생들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대 대학원생들이 내게 보여준 것은 제자들이 교수들에게 사랑의 체찍을 든 격이었다.

요즈음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학자들 중 많은 분들이 대학강단보다는 정치권에, 그것도 대권주자군들 진영에 스스로 찾아가 줄을 서고 있다.

한국과 같은 좁은 나라에 국제정치학자만도 1천명이 넘는 맘모스 학회가 되다보니 여러성향의 교수들이 있기 마련이겠지만, 교수들이 자기본분을 떠나 정치판가 연계지으려고 노력하는 자태는 학문하는선비정신이 아니다.

한국대학교육이 비뚤어지고 있는 책임의 일단을 비생산적이고 비교육적인 정치권과 공부하기 싫어하는 교수들이 함께 져야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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