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찬 문화제’를 다녀와서

23일(일) 경희대에서는 김형찬군을 위한 문화공연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김형찬군은 안기부에 불법연행된 후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분신을 기도했고, 지금은 병원에서 치료중이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국민들의 안기부법 개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기도 했다.

경희대에 도착하고보니 소문대로 교문은 잠긴 채 전경과 백골단이 몇겹으로 학교를 둘러싸고 있어 경희대 학생은 물론, 경희의료원 환자마저 출입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예정된 공연시간은 오후5시였으나, 교문 밖에서 학교내의 상황을 주시하던 1천여명의 학생들은 결국 오후6시20분이 되서야 무사히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운동장에는 아무런 무대장치가 준비돼 있지 않았고, 텅빈 스탠드만 싸늘한 저녁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때의 처량함이란… 그 동안 많은 이들이 한 달이상 준비한 공연을 단지 이틀이라는 시간에 모두 봉쇄해 버리는 공권력, 그리고 이를 지시한 사람들. 이것이 문민정부라면 군부정권과의 차이는 무엇인가… 일련의 생각들이 스쳐갔다.

오후7사20분경, 임시무대를 마련하고 경희대 총학생회에서 빌린 앰프로 공연은 시작됐다.

새내기들의 문예공연, 천리마, 조국과 청춘, 그리고 희망새… 공연은 약소하나마 알차고 의미있었다.

그러나 희망새의 공연 도중 갑자기 학생들이 순간적으로 흩어졌다.

전경이 교내로 진입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당황해 안쪽으로 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사태가 진정됐고 학생들은 다시 모였다.

그 날의 마지막 공연은 대동놀이였다.

원천봉쇄를 뚫고 들어온 2천여명의 학생들이 하나로 뱃놀이를 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아마도 그것이 하나됨이 아닐까 한다.

뜻을 같이 하는 모두가 서로를 느끼며 함께 행동하는 것. 그날의 일은 예상대로 언론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많은 학생들이 모르고 있었다.

현 정부의 언론 플레이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노수석군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와 류재을군이 우리 곁을 떠났을 때의 상황. 뒤로는 진보세력을 탄압하며 동시에 여론을 유리하게 몰아가는, 그러면서 노동법·안기부법의 개악보다는 북한 붕괴, 전쟁 분위기 조성 같은 이야기로 공안 정국을 만들어가는… 참으로 갑갑함을 느낀다.

현재 우리가 절실히 원하는 것은 경제성장 몇 퍼센트가 아니라 우리 헌법에 나와 있는 정치·사상·결사·표현의 자유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그런 사회. 정치학을 배우는 한 학생으로 씁쓸함을 느낀다.

앞으로 있을 대선을 겨냥해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사뭇 두려움마저 든다.

또다시 북풍이 불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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