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노인보건복지법안이 예산 미확정등의 이유로 임시국회를 통과하지 못함에 따라 내년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던 경로연금 등 노인복지를 위한 프로그램이 연기됐다.

사실 경로연금은 평생을 전쟁과 정치적 격변, 절대빈곤 속에서 오늘날의 경제 성장 주역들을 길렀던, 그러면서도 각종 성장의 과실로부터는 소외됐던 오늘날의 노인세대가 마지막으로 국가에 건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95년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은 아직 5.7%이지만 2천년에는 7%를 넘어서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더욱 주목할 것은 고령화가 진행되는 속도로, 노인인구 비율이 7%에서 14%로 되는 기간이 영국과서독은 45년, 프랑스는 1백15년이었으나 우리나라는 25년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직장에서의 평균퇴직연령이 낮은 우리의 현실여건까지 감안한다면, 노인문제는 더이상 모른척 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복지정책의 시급한 선택을 기다리는 과제가 되고 있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인복지 수준은 매우 미흡하다.

점점 다양해지고 있는 복지서비스 욕구는 물론이고 기본적인 소득보장 욕구마저도 모두 노인 자신이나 가족에 의해 충족돼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도 지배적이어서 소수의 노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부조제도를 제외한 다른 복지제도는 아직 체계화되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나 이같은 사정이 노인복지 분야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동들은 건강하고 안전하게 양육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 채 각종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장애인들은 여전히 사회적으로 통합되지 못한 채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물론 이같은 미흡한 복지수준의 책임을 모두 국가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복지국가보다는 복지사회를 향하여 다양한 민간분야와 국민들 개개인의 자발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측면도 있으며, 국가가 한정된 예산 내에서 여러가지 정책적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하는 어렴움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위의 노인복지접안이 통과되지 못했던 것도 일반예산으로는 결오연금의 재원을 조달할 수 없다는 국가재정상의 어려움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우리는 곤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인당 국민소득 1만불시대를 사는 우리의 복지수준이 총량적인 경제성장이나 혹은 OECD가입등과 같은 외형적 국가발전과는 너무도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리한 삶의 조건을 가진 우리의 복지대상자들은 언제까지‘삶의 질’을 경제논리에 종속시킨 채 기다려야만 할 것인가. 결국 우리는 국민총생산(CNP) 또는 1인단 국민소득의 규모가 국민의 삶의 질과 정비례한다는 이제까지의 가정이 수정돼야 한다는 것을 체감할 수 밖에 없다.

즉 경제활동 규모에 중점을 두고 계산된 총량적 소득개념은 생활필수품의 절대량이 부족했던 초기 자본주의사회의 복지수준을 측정하는 데에 어느 정도 타당성을 지녔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국민생활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하기에는 미흡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 위는 종래의 국민총생산 개념보다는 국민의 삶의 질을 나타낼 수 있는‘국민복지 GNP’의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이와 함께 또하나 경계해야 할 것은 최근에 선진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복지국가위기론 등을 여과없이 받아들이려는 경향으로 이는 복지국가 비판론이 제기된 사회와 우리 사회의 엄청난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및 복지부분에 투자되고 있는 예산은 94년 기준으로 GNP의 1.9%를 차지하여, 국제적으로도 매우 열악한 재정규모를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예산의 30∼40% 정도를 사회복지 혹은 사회보장비로 지출하는 선진 복지국가의 논리를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위험한 발상은 반드시 극복돼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노인부양이나 아동의 양육과 보호, 장애인에 대한 지원등의 책임을 지나치게 가족에게 의존해 왔다.

그러나 오늘날 가족은 더이상 이들에 대한 복지서비스 제공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만큼 튼튼하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사회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는 단위가 돼가고 있다.

따라서 복지제도는 이제 더 이상 경제논리에 의해 미뤄지거나 혹은 가족의 책임으로 돌리기 힘든, 매우 급히 확립돼야 할 국가정책적 과제이다.

이를 위한 국민 모두의 인식재고와 정책책임자의 결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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