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가서 나는 책을 빌리고자 한다.

가장 깨끗한, 즉 밑줄이 총천연색으로 쳐져있지 않은 책을 찾으려고 책들을 모두 훑어 본다.

아주 깨끗한 책을 찾으면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모든 책에 지저분하게 줄이 쳐져있으면 신경질을 팍팍내면서 책을 빌린다.

빌린 책을 읽으며 요점 정리를 위해 더 두드러질 만한 페능로 신나게 줄을 친다.

그날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밑줄하나 안 그어져 있는 깨끗한 책이어서 기분좋은 상태로 전철을 탔다.

그리고 어김없이 신나게 밑줄을 그으며 책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있는 아주머니께서 “학생, 도서관 책인것 같은데 그렇게 줄을 그으면 어떡해요? 여러명이 보는 책에 그러면 안되지”라고 말씀하셨다.

그 아주머니는 책에 찍혀있는 ‘이화여대 도서관’이라는 글씨를 보고 단번에 도서관 책이라는 것을 아신 것 같다.

얼굴이 화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곧 나 자신에 대해 충격을 먹엇다.

어떻게 밀린 책을 내 책처럼 줄을 긋고 이에 대해 한번도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을까. 레포트를 쓰기 위해선 도서관에서 많은 수의 책을 대여하게 된다.

중요 문장에 줄긋기를 하면 빠르게 요점정리를 할 수 있으므로 나도 줄을 그었던 것이다.

게다가 도서관의 책들은 늘 줄이 그어져 있어서 내 양심도 둔해졌었나보다.

분명히 그 책은 내 책이 아닌데도 말이다.

나는 누군가 비양심적인 일을 하면 울그락 불그락 대지만 정작 내 자신이 한 일은 사소하게 여길정도로 양심이 무뎌져 잇었다.

그후 나는 줄을 긋지 않고 요점정리를 하기 위해 중요부분을 연필로 살짝 표시하고 나중에 반납할 때는 이를 지웠다.

그들의 것도 내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해진 것이다.

아무리 다른 책들이 화려하게 채색돼도 이화도서관의 책들은 줄이 그어져 있지 않은 흑백의 책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책을 대여할 때 그중 깨끗한 책을 찾기위해 동일제목의 모든 책을 살펴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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