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뒤집어 보는 일은 재미있을 것 같아도 쉬운 일은 아니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힘을 갖기도 전에 식상해져버린 요즘,어떤 고민을 가지고 이화인들에게 접근해야 할지 상당히 막막한 것이 사실이다.

페미니즘적인 사고나 성향을 갖는 것이 모든 이화인들과 뭇 여성들에게 어쩌면 당연하게 여겨질지라도,말만 난무하는 페미니즘은 마시기도 전에 김이 빠져버린 콜라 같은 것이 돼버린 것 같아 씁쓸할 때가 많다.

여성이라는 근거를 가지고 출발하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여성위원회의 활동은 생활 속에 잠재되어있던 문제점들을 바라보는 데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주고 있다.

많은 이화인들은 이미 진부해져 버린‘여성의 시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여자라는 것을 한번 더 상기하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황에 빠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눈썰미 있는 몇몇 이화인들은 이화광장의 게시판에 붙었던‘섹심이와 페미’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대화를 기억할 것이다.

섹시한 것이 좋고 예쁘면 그만이나는 섹심이와,막연히 섹심이를 비난하면서도 명확한 근거를 대지 못하는 페미의 힘없음에 대하여, 그저 지나치거나 여성위원회의 수준에 대하여 한탄을 하기도 하는 이화인들을 자보를 통하여 만났다.

여성위원회는 섹심이를 비난하지도 페미를 옹호하지도 않는다.

언제 어디서나 한번쯤은 막역하게라도 지나쳤을 고민들속에 그려지는 우리의 모습을 상기해 보고자 하는 소박한 의도인 것이다.

페미니즘은 분명 거대 담론의 하나로 등장하였고 현대를 주름잡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그런 거창함을 등에 업고서‘이땅을 뒤집자’라는 구호보다는 일상에서 만나는 우리의 이중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위한 섹시함이며 아름다움인가,과연 내가 좋아서인가라는 등의 진부한 물음이 끊임없이 제기될 때 막연하기만 했던 페미니즘은 힘을 갖고 구호에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을까. 미인대회 자보를 보면서 입으로는 욕을 하면서도 손으로는 자신의 어깨 각도를 확인하는 이화인들의 모습속에서, 신디크로포드의 반라사진이 붙은 미팅제안엽서를 받고 울분하면서도 날마다 찍혀 나오는 스포츠신문의 연예인들의 포즈는 관대하게 보아넘기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의 분열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미지수로만 남아 있다.

이러한 답답함과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위원회의 친그들은 낡고 진부한 물음들을 끊임없이 제기하여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질서들에 대해 덤덤해하며 무시하지 않고 항상 우리의 답답함을 담아내는 작업을 해나갈 것이다.

잔잔하지만 꾸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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