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회 나는 현재 한 전통있는 여자고등학교의 이화동문 회장을 맡고 있다.

동문회 하면 고교시절 과학교과서에서 보았던 오리새끼의‘낯설게 하기’실험이 생각난다.

대학에 입학한 후 갑자기 닥쳐온 무한한 자유로움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고 혼란해 할 때, 처음부터 나의 이름을 알고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던 동문회라는 곳. 아마도 난 마치 갓 태여난 오리새끼처럼 그 생소함에 끌려 그곳에 적을 두고 살게 되었던 것이리라. 동문회는 말 그대로 동문들의 모임이다.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 곳은 편안하고, 자유롭고, 모이면 옛기억을 더듬으며 소중한 추억들을 대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이다.

인간관계의 끈은 선배, 동기, 후배로 이어지고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각자의 우물을 채울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동문회가 푹신한 소파처럼 안락만을 연상시켜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왜일까. 그것은 단지 의례적으로 졸업생 환송회나 새내기 환영회에만 참석하고 동문회는 언제든지 편한 때를 맞추어 나올 수 있다는 느슨함과 모이면 단지 술마시고 소비적인 만남만을 지속키는 것의 문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우리 동문회에는 두가지가 있다.

그 한가지로 지금은 동문회의 대다수가 하고 있는 남자고등학교와의 연합 동문회이다.

소위 조인트라고 하며, 초기에는 확실히 새바람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 또한 본직적으로는 홀로서지 못하는 동문회의 비자생적인 모습을 증명하는 일로 연결된다는 측면이 지적된다.

그래서 이런 모습도 생각해 보았다.

동문회 속에서 특유의 개성을 살려 소모임이나 세미나를 위한 학회를 조직해 나름대로의 의미와 주제를 찾아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화모임, 농구모임 등으로 ㅁ라이다.

서로의 평범한 모습 속에서 부터 새로운 모임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새로움을 찾아가는 만남이 이제는 우리의 전통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동문이라는 기본적 끈을 가지고도 자칫 느슨해져서 동문회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수도 있는 모임을 의미있는 만남으로 모든 사람이 함께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도 찾아보고 싶기도 하다.

김지애(국문·3) 중국연수 광활한 땅의 주인공 중국을 바라보며 가슴 설레던 날, 어제 같기만 한 지금 다시금 그 날을 되새겨 본다.

처음 중국 땅을 밟고서, 공항이라서 그런지 썰렁하기만 한 곳. 그것이 내가 받은 중국의 첫인상이었다.

연수보다는 중국인의 생활상과 문화를 알려던 것이 나의 목표였기에 가능한 한 많은 중국인과 접해보고 싶었다.

시장바닥을 누비고 택시를 자아타며 그렇게 중국을 알아 갔다.

내가 처음 중국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택시 기사 아저씨들과 였다.

외모 때문이었을까. 항상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농담과 함께 주고 받은 그 몇 마디가 참으로 도움이 컸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경제적 선진국인 우리를 부러워하면서 항상 그들이 내게 강조하던 말이 생각난다.

‘중국은 진정한 남녀평등이 이루어진 사회’라고. 여전히 여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2십여년을 살다보니 솔직히 믿을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나에게 앞치마를 두르시고 부엌에서 말없이 설거지를 하시는 한 중국인 가장의 모습은 그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어느 중국 가정의 초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식사 후 문득 아저씨가 안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들려오는 물소리와 함께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고 계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국에서 여성이 선뜻 집에 친구를 초대하기를 꺼리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바로 모든 가사일을 여성이 부담애햐 한다는 부담 때문이 아닌가. 손님을 초대해 놓고 먼저 일이 있다며 외출하는 아내, 사무실마다 당당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여성, 남녀 모두 사회 생활을 하니 육아문제도 당연히 둘의 몫이라는 그들의 사고방식은 사뭇 우리나라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렇게 가정에서부터 남녀평등이 실현된다면 사회에서의 남녀평등은 자연스러울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서 남녀평등의 생활화될 수 있었던 것은 옛날부터 전족을 시킬만큼 여성이 귀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주의라는 특수한 정치이념 때문일까. 경제적으로는 아직 후진죽의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우리보다 앞장서 있는 중국이 세삼 부러워진다.

이종윤(중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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