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강당을 가득 메운 7백여 이화인을 때로 당황스럽게 때로 더없이 진지하게 만드는 수업, 지나치게 자유스런 분위기가 짜증스럽다가도 그 시간의 논점을 학생들 스스로 풀게 되고야마는 수업, 바로「마르크스주의와 북한사회」시간이다.

주위 선배들로부터 워낙 명강의다, 뭔가 다른 수업이다라는 말을 듣고 기대에 부풀어 들어갔던 학기초, 너무나 파격적인 수업방식이 어색하고 불만스럽기까지 했었다.

아무리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다고 해도 비싼 등록급을 낸 금쪽같은 수업시간에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하질 않나, 교재의 한 문장 해석을 위해 별로 중요할 것 같지도 않은 학생들의 의견을 열명이고 스무명이고 계쏙 발표하게 하질 않나, 학생이 주체가 되는 수업도 좋지만 특별한 준비나 사전의 충분한 고민없이 들어온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무조건 수업을 스스로 이끌어 보라는 것 역시 하나의 강요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세미나식의 수업이 가능한 소규모 강의도 아니고……. 그러나 그러한 불만 역시 12년동안 받은 주입식 교육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임을 수업에 익숙해지면서 느끼게 되었다.

쑥스러워 나서지 않던 친구들이 하나 둘씩 강단으로 나가게 되고, 발표내용도 처음의 막연한 생활의 감상에서 점차 수업내용에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되어갔다.

이상림 교수님의 이 수업은 마르크스주의적인 방법론을 통한 분석능력, 인식능력을 학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으로 종교를 비롯한 사회제현상을 비판·분석해내고, 사적 유물론을 배움으로 우리나라 사회 현실을 인식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것처럼 무미건조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학생들 스스로 수업내용의 의의와 필요성을 절감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이 수업의 특징이다.

몇백명의 수강생이 있는 대형강의실이지만 과감하게 진행되는 자유토론, 그러나 난상토론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제시하는 질문과 반론으로 방향을 가지고 결론을 이끌어내고 이해하게 되는, 또 그 결론이 결코 지식의 수준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생활속의 문제의식으로 승화되도록 하는 것이다.

현실 속에서의 문제의식과 실천을 유난히 강조한 마르크스 철학을 강의하는 자리여서일까. 지난번 강경대열사치사사건과 잇따른 분신소식에 분노하시면서 분노가 다만 감정으로 그쳤을때는 아무런 힘도 지닐 수 없음을 지적하시고 현실사회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도구로써의 지식과 학문을 강조하시던 강의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수업내용의 이해여부와는 관계없이 잘 정리된 노트만 있으면 시험도 학점도 걱정없는 그런 교양과목에 불만을 느낀다면, 한꺼번에 많은 지식을 손쉽게 알아버리기 보다는 하나하나 자신의 내용으로 체화되는 수업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이제까지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이상린 교수님의「마르크스주의와 북한사회」를 권해 주고 싶다.

이진화(법학·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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