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서 네번째의 만발한 개나리를 만난다.

아, 그리고 봄이 왔다.

캠퍼스는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슬프도록 눈부신 자연의 물감으로 그리고 생기있는 이화인들의 모습으로 풍요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3학년 1학기말에 수강신청을 할때는 교양과목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그러기에 제한된 교양과목 수를 선택해야만 하는 입장에서 더구나 전공과목 시간표와 겹치지 않은 시간대의 교양과목들중에서 「성의 사회학」시간을 만나게 된 것은 나의 욕심을 채우는데 있어서 대단한 행운이었다.

「성의 사회학」은 내가「여성학」을 들으면서 얻는 깨달음의 재미와 비슷하면서도 그것과는 또 다른 독특한 맛이 있었다.

「여성학」과목의 특징인 소그룹 주제별 토론의 형식에 비교한다면「성의 사회학」은 그것은 엄두도 못낼 몇백명의 대형강의다.

그리고 굳이 형식을 말한다면 대부분의 다른 강의들과 마찬가지로 전형적인 일방통행식의 강의이다.

그러나 수업시간에는 마치 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말라붙은 진흙조각들을 떼어내는 듯한 느낌을 받곤했다.

그건 아마도 나의 사회적 통념에 길들여진 무의식적 동조나 고정관념들이 미련없이 떨어져나가는 소리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고정관념이란 여성성과 남성성을 이분법적으로 양분해서 여성은 감정적이며 의존적이고, 남성은 이성적이며 독립적이라는 성역할 개념에 대한 흑백논리들을 말한다.

「성의 사회학」은 그 내용이나 방향이 「여성학」과 매우 흡사하다.

조금 다른 점은 「여성학」의「여성해방운동」적인 색채가, 남녀성차를 중심으로 해서 사회학적으로 접근한「성의 사회학」에 비해 조금 더 짙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여성해방은 곧 남성해방, 그것은 인간해방」이라는 기본 모토는 같다.

수업시간중에 깨달은 것은 여성을 억압하는 많은 기저들중에서 성에 대한 무지 자체의 역할도 지대하다는 것과 남성들 보다는 주로 여성들을 옭아매는데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만 독특하게「가정파괴범」이라는 단어가 생기고, 또 공공연하게 쓰이는 것은 철저한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에 길들여진 우리사회의 현주소를 직시하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예가 된다.

이 강의를 해주시는 분은 서구적인 것 같지만 지극히 한국적이고 도시적으로 세련되면서도 토속적 구수함을 지닌, 그리고 전라도가 고향이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인 경상도 사투리를 가진 김동일 교수님이다.

교수님은 남성이지만 사회학적 이론을 근거로 여성해방을 지지한다.

자신이 걸어왔던 인생역정을 강의시간마다 하나씩 풀어놓으면서 우리가 왜「성의 사회학」을 부르짖어야 하는지 설득한다.

이러한 수업방식과 강의내용을 접해보지 않았고 여성해방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이화인이 있다면 다음학기에는 꼭「성의 사회학을 들었으면 한다」 권원영(특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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