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원(79년 불어불문학과 졸업 도서출판 공동체 대표) 80년 5월 항쟁 이후 들불처럼일어나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전두환정권의 탄압이 끊이지 않고 있을 무렵 나는 생각지도 않게 출판사를 맡아 운영하게 되었다.

출판사와 사회운동단체일을 병행하던 남편이 더이상 출판업에 전념할수 없게 되고서부터이다.

당시 나는 출판 경력 3년의 풋나기로 출판경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엇었지만, 아이가 둘이나 딸린주부가 다른 직장에 취직해 일을 하며 가계를 꾸려나가기는 더욱 힘든 실정이었다.

등을 떠밀리다시피 출판사 살림을 시작한 나로서는 모든 것이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에서도 확연히 느낄수 있었던 것은 당시 소위사회과학출판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자세랄까 어떤 사명감같은 것이었다.

신문의 1단기사를 장식하는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의 출판사 대표 구속은 오히려 양반이고 그러기 전에 먼저 서점에서 영장없이 고압적으로 행해지는 압수수색이 비일비재했던 때였다.

이른바 「판금서적 목록」을 만들어서 각 서점에 배포하고 그 목록에 있는 책을 판 서점 주인을 연행 구속시키기까지하였다.

반독재 바정권의 깃발아래 학생운동이 더욱더 가열되고 조직화되어 나가자 5공 정권은 반공이데올로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디. 모든 민족 민주운동 세력이나 활동가들에게 소위 좌경·용공이라는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 보건대 반민주적 반민중적 전두환정권과의 싸움은 역사적 필연이었고 당위였다.

그런데 그 싸움의 최전선에 바로 사회과학출판인들이 서게 되었던 것이다.

군사 쿠데타에 의한 정권을 세워놓고 마치 선심이라도 쓰는양 마르크스에 관한 책을 내도좋다는 발표를 문공부측에서 하기는 했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출판인들사이에서 전설처럼 이야기되던 때였다.

5월 광주항쟁기록을 출판한 출판사 대표는 1년여를 피해다니다가 마침내는 우리나라 민중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기술한 책 때문에 구속되었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는 민중혁명을 선동하는 이적표현물을 출판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일이 속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서도 그 누구보다도 먼저 우리의처지를 일깨우자 한 사람들이 출판인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온갖 경제·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사회과학출판을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결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역사의 필연성을 통찰하고 그에 거스르지 않는 소명의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뒤늦게나마 그러한 사회과학출판계에 들어오게 된 나로서는 따라가기 바쁠 정도였다.

그러나 6월 대투쟁 이후 지식인 중심의 운동이 대중으로 확산되고 그 열기가 폭발하자 대역전의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중의 생존권요구투쟁이나 학생들에 의한 통일운동의 깃발이 나부낄때 출판계는 그때까지의 진보성을 잃고 조금씩 주춤거렸던 것이다.

방향감각을 잃은 듯 허둥대다가 노정권의 7·7선언 이후 북한원전을 출판하면서 다소 활로를 찾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이고 또다시 몰아닥친 공안정국의 한파속에서 예전의 활기나 신선한 모험심을 찾아 보기는 어려워만 갔던 것이다.

사회과학출판의 역사를 이런 측면으로만 정리하는 것은 다소 무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경험속에서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가야할 과제가 숨겨져있다.

공권력에 의해 책을 빼앗기고 인신이 구속되면서도 반드시 얻어내야 했던 「출판의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이데올로기가 단 하나로 결정돼버린 사회에서는 또다른 주의, 주장을 선이는 책 자체가 출판의 자유를 상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요구가 더영화되고, 동구권의 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제 3의 지온사상의 출현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해지는 이즈음 출판 자유의 진정한 모습은 어떤 것인가. 지금까지 사회과학출판이 담당해왔던 역할을 유지하면서 또한 새로운 요구에 맞춰 나가면 될 것 같은 이문제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목소리 높게 외쳐왔던 출판의 자유는 어느 시기의 어느분야에만 한정된 것이어서 어느분야에만 한정된 것이어서 어찌 보면 아이러니컬하게도 경직된 자유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밖에 없었던 저간의 사정은 앞에서 보아왔지만 이제 더 이상 변명만 할 수 없다는 것을 하루에도 수 십종씩 쏟아지는 다양한 신간서적들이 말해주고 있는것이다.

출판의 자유는 참된 의미로 민주화된 사회에서 자라나 그 열매를 맺을 때 비로소 그 건강성을 회복할 것이다.

어둡기만 한 독재정권아래서는 말할 것도 없고 요즈음「많이 팔리는 책이 좋은 책이다」라는 식의 상업주의 아래에서도 진정한 출판의 자유는 꽃피우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6월항쟁 이후 대중들의 열기앞에서제 갈길을 찾지 못했던 출판계가 다시한번 경솔하게 대중에게서 배운다면 민주사회의 꽃인 사상·출판의 자유는 반드시 이룩되리라고 새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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