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은 교육환경 개선 실제는 군비증강

1982년 정부는 낙후한 교육시설을 개선하고 교원들의 보수를 높힌다는 목적으로 교육세를 징수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시한은 5년이었다.

첫 기간에도 교육세가 원래 목적대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전용되기도 한다는 소리가 있었으나 풍문으로만 여겼었다.

교육세 징수의 시한인 1986년이 되자 정부는 계획이 잘못되었고 교육환경 개선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며 다시 그 징수시한을 5년으로 연장하여 현재까지 계속 교육세를 거두어 들이고 있다.

그리고 지난 8월 25일에 발표된 정부의 「90년 세제 개편안」속에는 교육세의 영구화방침도 함께 들어 있다는 소식이다.

교육세의 징수 시작부터 현재까지의 드러나는 문제점들을 두가지 면에서 생각해 보려 한다.

첫째, 교육세 징수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전용절차에 대한 정부의 윤리의 문제와, 둘째, 이들 10여년간 방치하고 있는 납세자인 국민들의 의식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교육세의 전용이 소문으로 떠들기 시작한 때부터 현재까지도 정부는 목적세인 교육세의 용처를 명백히 밝힌 적이 없었다.

아니, 밝힐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교육세 전용에 대한 해명도 하지 않았으며, 애초부터 교육세 징수의 필요성이나 목적에 관해서 정부는 납세자인 국민들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저항이나 비판도 하지 않은 채 여전히 세금을 내고 있으며 교육세의 영구화 계획에 대해서조차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납부해 온 교육세가 간접세의 형태였기 때문에 세금을 내고 있다는 생각이 직접 피부로 와 닿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별로 저항감이 없고 두루 통할 것 같은 그럴 듯한 목적을 내세우기만 하면 수단이나 절차는 정당하지 않아도 슬그머니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교육이라는 이름을 붙이면 삼청교육도 가능하고 신입사원교육이라고 하면 지옥훈련과 같은 비인간적인 방법도 납용되는 것일까? 교육현장 개선이라는 목적을 내세우기만 하면 또 별 저항없이 세수는 확보될른지도 모른다.

신문의 보도대로 폐지되는 방위세를 대신할 세원의 확보로서 교육세가 영구화되는 것이라면 교육세라는 이름을 구차하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일반세로서 세원을 확보해야 한다.

목적 자체의 이중성까지 곁들여지면 숨겨진 의도를 가리기 위해 절차는 더욱 복잡하고 불분명하게 되어갈 것이다.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이나 절차도 정당해야 한다.

세원 확보의 방안으로 교육세를 내세우지 말고 일반세로 세원은 확보되어야 하지만, 교육현장의 개선이라는 필요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교육세라는 세목을 여전히 남겨 두려거든 교육세는 원래 의도대로 정당하게 교육현장으로 돌려져야 한다.

교육의 이름으로 다른 일들을 저지르는 경우는 줄어들어야 한다.

정부의 자의대로 교육세가 사용되어질 수 있으며, 그리고 이를 방관하고 있는 세태에서 우리 사회가 교육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가치관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말로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교육은 국가 발전의 기초라고 추켜 세우지만 실제로 교육의 개선은 경제발전이나 국가방위보다 그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아무리 부유한 나라라도 무한대의 자원을 가지고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아니며 한정된 범위의 예산을 놓고 사회의 각 부문들이 경쟁할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사회의 가치관이 구체화된다.

교육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우선순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지만, 경제발전이 급하고 국방이 우선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가치부여는 정직하게 예산배정의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세력들 중에서 교육계는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급하게 이루어야 할 일이 많은 나라에서 눈에 보이는 실적이 중요하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먼 교육의 효과는 아무리 주장해 보아야 호소력이 약할지도 모른다.

경제발전과 국방에 나서는 인력을 교육이 제공해야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교육세의 전용절차를 방치한 사회의 분위기, 특히 납세자들의 태도도 반성되어야 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교육열이 대단히 높다고 자칭한다.

그런데 자기 자식이 직접 관련된 사사로운 이해관계에는 과민반응을 보이는데 반해 공적인 교육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할 정도로 무감각하다.

올림픽 행사에서 매스게임을 할 학생들을 선발할 때에 수업결손을 크게 염려했던 어느 학교 학부모들의 거센 항의에 밀려 다른 학교로 배정이 바뀌었던 소동이 기억난다.

자기 자식의 과외비 100여만원이나 과외비 인상에는 과민하게 반응하면서 그 아이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의 전반적으로 낮은 보수에는 관심이 없다.

내 아이도 함께 앉아 공부하고 있는 교실의 전체 조명에는 무지한 채 자기 아이만 교실의 앞자리에 앉혀지기를 바란다.

주머니에서 직접 나가는 돈에는 예민하게 관심을 가지지만 공적인 교육세의 문제는 관심권밖에 있다.

교육세를 포함하여 교육정책에 관련된 결정과정은 공개되어야 한다.

교육은 그 효과가 손에 잡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사로운 일이 아니며 미치는 영향력은 지속적이고도 길다.

특정 소수의 개인들에 의해서 슬그머니 결정되고 발표만 해버리는 악순환이 거듭되지 말아야 한다.

결정과정에 한국민 모두가 관여해야 한다거나 형식적인 공청회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공적인 교육문제에 국민이 무관심하다면 정부가 이를 의도적으로 조장하지 않는 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논쟁을 거쳐 의견의 공통분모를 찾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들이 올바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우선 관련정보를 정확히 제공해야 하며 결정과정은 공개되어야 한다.

소수의 결정으로 대다수 국민이 알지도 못한 채 피해를 입는 일이 되풀이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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