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학보 창간 48주년을 맞아 지난 7일(목) 오후 5시 KBS 본관에 있는 까페에서 이대학보 45기 사회부 기자로 퇴임한 황정민(영문·89) 선배를 만났다.

▲대학 시절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신 일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일을 열심히 했다기 보다 학보사 ‘다니는 것’을 제일 열심히 했어요. 1년에 1∼2주 쉬었는데, 추석 때도 학보사에 나와서 노래부르다 쫓겨나고 그랬어요. ‘이대학보과’라고 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했었죠. ▲선배님께서 신문을 만들던 90년 대 초의 학보는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 같은데요, 10년 전 학보의 모습은 어땠는지 말씀해 주세요. 예전에는 학보를 다른 친구들에게 보내주는 것이 대단한 일이었어요. 그런데 읽지는 않았죠. 기자들이 읽기에도 너무 어려웠거든요. 항상 ‘정권타도’만 외치고, 너무 깊은 문제를 다루다 보니 제대로 알지 못하고 쓰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 때 학보는 학생들에게 너무 멀었고 어려웠는데 그 당시 학보의 성향이었던 것 같아요. ▲사회부 기자로서 투쟁이나 집회 관련 기사를 많이 쓰셨던 것으로 아는데 직접 현장 취재를 가셨을 때 느끼신 점이 있다면요? 집회에 갔다오면 힘을 받는 것 같았고 뿌듯했어요. 구호를 외치고 나면 ‘세상에 무엇인가를 알렸구나’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그런데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을 지나 조용한 거리를 보면서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죠. 대학시절에는 노동조합을 순수한 이미지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사회에 나와서 보니 노동조합도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것을 알았고, 생각도 많이 바뀌었어요. ▲학보사 생활을 하다 보면 성적 관리도 하기 힘들고, 부모님께서 반대하시는 경우도 많은데요, 선배님은 어떠셨어요? 학보사 생활에서 얻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저 학점 나빴어요. 가족들도 학보사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요. 하지만 저는 학보사 생활을 하면서 작은 사회를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나이에 어떻게 부장이 될 수 있겠어요. 전반적인 대학 생활에 도움이 됐죠. 기능적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때는 대학 시절 뿐인 것 같아요. ▲대학 때 학보사 생활을 열심히 하셨네요. 지금 사회에 나와서는 ‘튀는 아나운서’로 통하시던데요, ‘튄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 사실 평범한 편이에요. 방송이라는 것은 원래 자기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반대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싶어하는 딜레마에 빠질 때가 있어요. 제가 그런 데에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하게 하다보니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여대에 다니는 학생들은 ‘여자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볼 것 같은데요. 선배님께서 생각하는 ‘여대’혹은 ‘대학’이라는 공간은 어떤 곳인가요? 여대 들어갈 때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나올 때는 좋았어요. 회사에서 의자를 옮길 일이 있었는데 저는 당연하게 제가 들어서 옮겼죠. 그랬더니 사람들이‘아니, 여자가 이런 일을!’하더라고요. 여대에서는 우리가 직접 현수막도 걸잖아요. 무슨 일이든지 기회를 많이 줬던 것 같아요. 사회 생활은 양파 껍질을 벗겨나가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소진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대학은 충분한 기회를 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한 가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여덟 가지 싫어하는 일도 해야 하는데 공동체 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을 잘 풀지 못하더라고요. 꼭 학보사가 아니더라도 동아리 활동을 권해주고 싶어요. 김예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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