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공학이 된 이대에서 여성학은 가장 인기있는 과목이다.

각종 페미니즘 문화제에 남학생이 참여해 함께 보라색 풍선을 날린다.

이대는 인류 최초로 여성주의적인 여남공학이 된다…? 이런 유쾌한 상상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실제로 연세대·서강대를 비롯한 많은 남녀공학 대학에 여성학 강좌가 개설돼 있다.

서강대의 경우 여성학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남자인데 여자친구나 여자 동료들의 영향으로, 혹은 페미니즘에 대해 학문적으로 알고 싶어서 여성학 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그러나 여성학은 여성과 남성이 불평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남성이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서강대 조옥라 여성학 연계전공 주임교수(사회학 전공)는 “여성학 수업을 통해 남학생들이 여성의 주장을 이해하게 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오히려 반여성주의적 논리를 정교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여학생이 여성학 수업시간에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는 점도 배제할 수 없다.

남학생은 여성학 수업시간에 여성을 타자로 이해하기 때문에 부담없이 얘기할 수 있지만 여성은 남학생이 있으면 ‘자신의 얘기’를 하기 부담스러워진다.

우리 학교 장필화 교수(여성학 전공)는 “계절학기 수업을 진행해보면 전체 학생 100명중 소수인 10명의 남학생이 수업을 주도하게 된다”며 “여성학을 배우는 시간인데 정작 여성이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여성학을 배운 남성들은 소위 ‘남성 페미니스트’가 된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페미니스트보다 다른 남성들에게 설득력을 얻기 쉽기 때문에 여성의 대변자로 행동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권력화된다.

이로 인해 정작 여성이 여성학 논의에서 소외될 수 있다.

실제로 페미니스트들이 훨씬 많은데도 이들보다 남성 페미니스트가 더 유명세를 갖게 되는 것에서 이런 모순적인 현상을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의 여성학이 ‘남녀공학’을 통해 남성을 수용하면서 새로운 학문적 방향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최근 남녀공학인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는 젠더학과가 생겨났다.

젠더학과는 여성주의에 뿌리내리고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젠더학은 여성학에 대한 남성들의 반격에 타협하는 측면이 있어 여성의 불평등을 이야기하는 여성학에 비해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대가 남녀공학이 된다면 교내·외에서 ‘이화 여성학’의 영향력은 어떻게 될까? 성신여대 이수자(여성학 전공)교수는 “세종대, 상명대, 가톨릭대 등 남녀공학이 된 여대들이 거의 예외없이 1∼2년 사이에 남성화됐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표했다.

그러나 이화인들의 예측은 다르다.

정지영(환경·3)씨는 “남녀공학이 되면 좀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여성학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김미영(조형·2)씨는 “남자들이 여성학을 많이 들을 것이고 여자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남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남성이 ‘진짜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어렵다.

김은실 교수(여성학 전공)는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남성의 최대 목표는 페미니스트의 지도자가 아니라 친구가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페미니스트의 친구가 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여성학의 메카’인 이대가 남녀공학이 된다면 여성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뭔가 ‘다른’ 남성을 길러낼 수 있지 않을까.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