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아닌가 싶다.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사람과 만나고 사람과 부대끼며 갈등·충돌이 빚어지고 해결되고….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사회에서 누군가와 관계 맺기가 시작될 때면 그에 대한 관심은 대부분 ‘학벌’에서부터 출발하지는 않는가? 첫만남에서 “어느 대학 다니세요?”라는 질문을 쉽게 말하고 듣는 우리는 결국 학벌의 ‘순위’에 따라 한 사람의 인격을 판가름하는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조차 뛰어난 학벌을 가진 사람에 대한 비판은 곧 열등감과 시기·질투로부터 비롯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학벌없는 사회’ 회원인 친구를 만나 ‘학벌없는 사회’ 신문발간에 참여하고 세미나도 함께 할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나는 학벌주의의 폐해가 특정대학의 권력독점이라는 비판을 넘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차별을 야기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좋은 학벌에서 배재된 사람들까지도 문제 원인을 자신의 무능력으로 귀결하는 모순을 보면서 할 수 있는 한 비판의 칼날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지난 5일(수) 수능시험 당일 대학로에서 ‘수능반대 페스티발’이 열렸다.

수능시험을 조금도 의심치 않았던 과거의 내 모습에서 벗어나 이제는 그것을 반대하고 비판할 수 있음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날 1교시 언어영역 시험 후 한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좋은 학벌을 따내기 위해 야만적인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사회 속에서 그 학생은 자유롭고 싶어 ‘선택’을 한 것이 아닐까. 알게 모르게 자행되는 이 죽음들은 냉혹한 사회에 의한 타살인 셈이다.

차별을 차별이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그리고 내가 당하는, 혹은 내가 가하는 차별은 없는지 한번 더 성찰하자. 그 시점에서 학벌없는 사회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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