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사람’에 속하나요?” 인터뷰를 요청한 기자에게 당황스런 질문이 건네졌다.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 답을 고민해봤지만 노들장애인야간학교 박경석 교장은 다리가 불편해 휠체어에 앉아있을 뿐 영락없는 ‘사람’이었다.

“이 사회는 장애인을 기생충이나 쓰레기처럼 바라보고 취급하죠” 라는 그의 말에 그동안 장애인으로써 받은 차별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지체 장애 1급. 마비된 다리 때문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만 하는 박경석씨는 그 누구보다 해야할 일이 많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장·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 공동대표·한신대 장애복지학 교수 등의 직책이 바쁜 그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노들장애야간학교는 그의 삶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그곳에서 그는 교육의 기회를 놓친 장애인들의 검정고시를 도와주고 있으며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의 확보를 위해 또한 힘쓰고 있다.

하지만 그도 몸소 장애를 갖기 전에는 ‘장애’에 무관심한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행글라이더에 꿈을 싣던 대학시절 제1회 행글라이더 선수권 대회에서 갑작스런 사고로 ‘하체 마비’라는 판정을 받게 된 그는 장애인이 됐다는 충격이 너무 큰 나머지 다니던 대학까지 그만두며 5년동안 집에만 숨어 지냈다고 한다.

“그땐 내가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 들일 수 없었고, 내 인생에 희망이라곤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죠”.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지만 끈덕진 목숨은 쉽게 꺼지지 않았고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지나가기만 했다.

5년의 시간이 흐른 후 병원에서 만난 한 여자는 그의 인생은 급격히 변화시켰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그동안 숨겨져 있던 그의 희망을 다시 솟구치게 하는 촉매제가 됐다.

삶의 생기를 찾은 그는 그녀의 소개로 장애인종합복지관에 가서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게 됐으며 컴퓨터 등을 비롯한 직업훈련도 받게 됐다.

또한 도중하차했던 대학에 대한 욕심도 생기면서 다시 공부해 숭실대에 진학하게 됐고 대학안에서 전국장애인한가족협회에서 활동하면서 노들장애인야간학교를 알게 돼 교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2년 정도 활동할 계획이었지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이겨내고자 하는 그의 열기가 10년동안 여기에 머무르게 했다.

그는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신체장애가 사회활동의 걸림돌이 되지 않고 일반 구성원과 자연스레 어울릴 수 있는 사회구조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비장애인들과 일상생활에서 자주 부딪히는 것이야말로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며 “정부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등 장애인이 마음껏 거리를 누빌 수 있는 이동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라고 거듭 강조한다.

요즘 그는 재판을 받고 있다.

장애인의 차별적인 구조개선을 위해 집회를 여는 과정에서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버스·도로점거를 통해 알리고자 한 행위가 문제가 된 것이다.

모든 걸 감수하면서 오로지 장애인 생존권을 위해 온몸을 던진 박경석 교장. “잘못되더라도 구속밖에 더 되겠어요?”라며 웃음을 짓고 있지만 그 뒷편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차별의 아픔이 짙게 배어있다.

척박한 이 사회에 대항해 오늘도 그는 장애인의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며 휠체어를 끌고 거리로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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