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에 남·여 화장실은 따로 있는데 장애인 화장실은 남녀공용이네요. 장애인은 ‘무성(無性)’이란 뜻인가요?” 지난 25일(화) 우리 학교를 방문한 장애여성 정영란씨의 한숨어린 불만이다.

“남여공용 장애인 화장실 안에서 남자가 나오면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요. 비장애인 입장에서는 그저 장애인 화장실이 있기만 하면 그만이겠지만 내 정체성은 분명히 여자인걸요.” 장애인 편의시설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 학교에서 그나마 있는 장애인 화장실조차 또다른 차별을 낳고 있다.

이 차별은 사회 구조가 장애여성에게 가하는 성폭력이 아닐까? 이처럼 장애여성을 ‘무성’으로 대하는 폭력은 가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전과는 달리, 딸이 첫 월경을 하면 축하하며 파티까지 열어주는 신세대 부모가 있다지만 장애여성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축하는커녕 오히려 부모·형제로부터 ‘결혼도 못하고 아기도 못낳을텐데 월경은 해서 뭐하나’, ‘자기 몸도 못가누면서 월경은 무슨…’이라는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장애여성의 인권을 위한 단체인 장애여성공감 정영란 사무국장은 “이처럼 가정에서조차 여성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무성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장애여성 스스로 정체성을 혼란스러워 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장애여성에 대한 ‘무성적 취급’을 뛰어넘어, 장애인이면서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사회 구조적 억압은 비장애인·장애남성조차 겪지 못하는 장애여성만의 또 다른 성폭력이다.

장애여성이 장애남성과 결혼할 경우 남자측 부모들은 아들보다 장애가 덜한 여성 또는 비장애여성을 신부감으로 선호하는 것도 한 예다.

결혼 후에도 장애여성에 대한 폭력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 해 4월 숨진 뇌성마비 1급 장애여성 최옥란 열사는 이혼 후 단지 장애를 지녔다는 이유로 아들의 양육권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정영란 사무국장은 “이는 장애인이라면 모두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거라는 잘못된 사회 인식의 결과”라며 “정확한 조사 없이 무조건적인 양육권 박탈은 장애여성의 모성보호법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남편에게 구타 등의 폭력을 당하고도 아무 말 못하는 경우처럼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형성된 권력관계에 의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교육·취업권에서도 장애여성은 소외당하고 있다.

2000년도 보건사회연구와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장애남성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비율 91.4%, 대학 졸업 비율 4.2%에 비해 장애여성은 각각 67.8%·4.2%로 그 비율이 현저히 낮다.

이 통계에 대해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김광이 정책위원은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의 학업성취율이 현저히 낮은 것도 문제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또다시 차별받는 장애여성의 현주소를 여실히 나타내준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장애남성은 남자 역할을 하려면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하지만 장애여성에 대해선 장애를 가진, 더군다나 여자가 배워서 뭐하겠냐는 사회적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학업성취율에서 나타난 장애여성의 이같은 차별은 능력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고용률 저하’라는 악순환을 낳기도 한다.

장애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성폭행을 비롯해 심지어 성매매까지 등장하는 결과를 낳는다.

실제로 최근 성남시 어느 유흥주점에서 장애여성을 대상으로 성매매와 구타 등 심각한 피해를 입힌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여성성폭력상담소 배복주 소장은 “장애여성의 경우 성적자기결정권이 박탈당하기 때문에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며 “사회 구조적으로 장애여성은 한 번쯤 건드려도 별 상관 없을거라는 인식이 본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편 장애여성이 받는 차별에 대해 연구 중인 우리 학교 박하연씨(여성학 전공 석사과정)는 “가부장적·능력주의 사회 구조가 장애여성을 억압·차별하는 궁극적 원인”이라며 이런 문제들이 단지 ‘장애’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비춰질 것을 우려한다.

그는 또 “잘못된 사회 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장애여성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광이 정책위원은 문제 해결을 위해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장애여성은 ‘장애’와 ‘여성’이라는 두 개의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이를 전적으로 전담하는 국가 부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 마리/ 새가/ 장애물과 부딪히며/ 날아간다/ 푸르르/ 날아가다가/ 사람들이/ 예쁘게/ 꾸며놓은/ 유리벽에/ 부딪힌다…’20대 장애여성 송은일씨가 쓴 시다.

잘못된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유리벽에 장애여성이 부딪히지 않고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잘못된 의식을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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