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에 따른 농민 반발과 원인·대책 점검

성난 농심(農心)이 볏가마를 들고 투쟁에 나섰다.

벼농사 풍년과 재고 누적으로 쌀값이 폭락하자 농민들이 ‘쌀값 폭락에 따른 대책 수립’ 등을 요구하며 전국적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종합토지세 등을 벼로 납부하는 ‘현물납부’와 볏가마를 쌓아 놓고 시위를 벌이는 ‘적재투쟁’ 등을 벌여왔고 지난달 13일(화) 열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상경투쟁에서는 전투경찰과의 마찰로 농민 수십명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현재 쌀가격은 쌀 40㎏당 생산비가 5만9천709원인데 비해 산지시세는 5만1천원대로 수매가가 생산비에도 못미칠 정도다.

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의 수매가도 정부 수매가 2등급인 5만7천760원보다 낮은 5만1천원∼5만3천원으로 지난해 전국 평균 수매가인 5만7천원에 비해 10% 정도 낮다.

올해 쌀값이 이렇게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은 풍년으로 쌀 생산량이 늘어났으나 1인당 쌀 소비량은 매년 줄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농 이호중 정책부장은 “올해 초만해도 정부는 다수확 품종을 심으라고 장려했고, 8월에는 작년 쌀값 수준을 유지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전혀 지키지 않았다”며 “이는 2004년 WTO 쌀 재협상을 앞두고 쌀값을 일부러 낮추려는 의도”라며 정부의 태도를 비판했다.

실제로 지난달 16일(금) 양곡유통위원회는 2004년 WTO 쌀 재협상을 앞두고 쌀 가격을 낮추기 위해 내년 정부 추곡수매가를 사상 처음으로 4∼5% 내리는 건의안을 확정했다.

쌀 관세화 여부를 결정하는 2004년 WTO 재협상에서 쌀이 관세화될 경우 국내 쌀값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쌀값이 한 가마당 각각 3·4만원인데 반해 우리 쌀값은 16만원으로 5배 정도가 높고 관세를 400% 붙여 수입한다고 해도 중국 쌀 가격은 12만원 정도로 여전히 4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점차적으로 쌀값을 낮춰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탁명구 정책조정실장은 “정부는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 단계적 대비책 마련없이 이제서야 갑자기 쌀값을 내리려 한다”며 정부의 고육지책을 꼬집었다.

또 이호중 정책부장은 “쌀 생산비의 46%를 차지하는 땅값이 중국, 미국보다 엄청나게 비싼데 생산비를 절감해 가격경쟁을 하려면 땅값부터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또 농사를 지어 적정이윤을 내고 그것을 연구에 재투자해야만 쌀의 품질을 높일 수 있는데 생산비 보장도 되지 않는 현실에서 정부의 품질 경쟁력 정책은 농민들에게 ‘배부른 소리’로 다가올 뿐이다.

쌀값 인하분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가 올해부터 실시하는 논농업직접지불제(직불제)도 ‘생색내기’라는 목소리가 높다.

농민들이 소유한 토지면적이 1.3ha∼1.5ha정도인 현실에서 1ha당 20∼25만원의 보조금으로는 실질적 ‘보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보조금은 전체 농업예산의 약 2.5% 로 미국 약 20%·일본 약 10%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낮다.

이호중 정책부장은 “더이상 정부 정책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농민들 사이에 팽배해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우선 쌀의 관세화를 막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이다.

전국농민단체협의회 김인식 사무총장은 “WTO 협상으로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공업 분야의 이익으로 농업의 손실을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또 고려대 한두봉 교수(식품자원경제학 전공)는 “직불제 보조금을 현 20∼25만원에서 40∼50만원으로 높여 실질적인 소득보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실질적 소득보장은 커녕 생산비 보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이대로 가다간 농민들은 파산하고 국민들은 수입쌀에 의존하다 국제 쌀값 상승에 먹거리를 위협받을 수 밖에 없다.

농민들의 현실을 고려한 정부의 중·장기 대책과 우리 쌀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만이 농촌을 살리고 궁극적으로 우리 먹거리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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