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차량기지 후원 지하철 공부방을 다녀와서

“굼벵이처럼 천천히 해야지. 붓을 똑바로 잡고….” 서예교실이 열린 11월 첫째주 화요일, 살며시 들여다본 은정초등학교 지하철 공부방은 묵향과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했다.

서툰 붓놀림으로 갱지에 한 일자(一)를 채워가는 동안에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딱딱할 것 같은 서예교실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지난 7월20일 문을 연 지하철 공부방은 신정차량기지 위 인공대지에 세워진 영세임대아파트에 사는 한부모·맞벌이 가정 아이들의 방과 후 지도를 위해 신정차량기지 지하철 노동자들이 만든 소중한 공간이다.

“700여명이나 되는 노동자분들이 조금씩 돈과 식권들을 모아 마련해주셨어요”라며 유춘희 선생님은 고마워한다.

이웃과 지역사회에 대한 노동조합의 관심과 사랑으로 은정초등학교 한 켠에 마련된 공부방은 한국통신의 지원으로 컴퓨터도 설치돼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이렇게 해서 꾸며진 지하철 공부방에는 두 명의 상근선생님들이 4∼6학년 아이들 12명을 돌보는 ‘엄마’역할을 하고 있다.

또 요일마다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진행하는 글쓰기·서예·영어 교실 등이 열리고 매주 수요일엔 요리교실과 현장학습이 이뤄진다.

“떡볶이·송편·빈대떡 등을 만들어 먹었어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 중 하나죠”라며 유춘희 선생님은 게시판에 붙어 있는 요리교실 풍경 사진들을 소개한다.

7·8월엔 을왕리 바닷가로 갯벌체험도 가고 MBC 방송국 견학도 다녀왔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체육시간’이다.

금요일 정규 체육시간 외에도 아이들은 틈만 나면 공부방 옆 공터로 뛰어나가 발야구와 축구를 한다.

언제든지 갖고 놀 수 있도록 야구장비나 배드민턴 기구들까지 마련해 놓은 데서 지하철노동조합원들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다.

석달이 넘는 공부방 생활을 통해 아이들의 성격도 훨씬 밝아지고 거칠었던 언어습관도 많이 고쳐졌다.

“즐겁게 놀고 꼬박꼬박 공부방 오는게 가장 기뻐요. 6학년들이 내년에 중학교 가도 공부방 오고싶다고 할 땐 너무 고맙죠”라며 선생님들은 환하게 웃는다.

그러나 수업이 답답하다며 아이들이 중간에 빠지거나 학습지도를 해줄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부족한 것이 안타깝다고. “조금 있으면 중학생이 되는 6학년 아이들을 지도해줄 수학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체육수업도 대학생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걸 아이들이 참 좋아하거든요.” “차려어엇∼ 선생니임께 경레에엣∼”, “선생님 안녕히계세요오∼” 오후 5시30분, 자칭 인기 1위인 반장 지운이의 구령에 맞춰 아이들의 인사소리가 공부방을 떠나갈 듯 하다.

어느새 축구공을 챙겨드는 아이들, “이섭아, 날씨 추우니까 옷 단단히 입고….”문밖까지 따라나오는 부윤숙 선생님의 목소리. 지하철 공부방의 종착역은 아이들의 웃음만큼 환한 동심 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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