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뛰어서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더라구요. 애들한테 해 줄 말은 많은데 무슨 말부터 해야할지…” 자식을 되찾은 심정으로 다시 교단에 섰다는 영등포여고 교사 송원재씨. 창문에 붙어 손 흔들던 아이들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 지 꼭 5년만의 일이었다.

“그 당시 학교는 문제가 많았어요. 교장이 학교 예산을 횡령하질 않나, 환경미화를 할땐 반별로 새마을란·반공란·바른생활란 등을 지정해 주기까지 했죠”라며 학교의 비민주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전교조 창립멤버로서 대변인 일을 맡아오다 89년 전교조 탈퇴각서를 거부해 교사직 파면과 함께 구속됐다는 그. 씁쓸하게 내뿜는 담배 연기 속에 시어머니를 동원하거나 교장이 서명을 위조하는 등의 갖은 치졸한 탈퇴요구에도 물러서지 않았던 당시 교사들의 모습이 서려 있는 듯하다.

“결국 1천500여 명이나 해직됐지만 전교조는 그들이 살려낸 거예요. 정부가 아무리 탄압해도 우리는 조직을 지켜낸 거죠”라고 말하는 그의 눈가 주름에서 교사로서의 양심을 지켜내기 위해 버텨온 지난 십년의 험난한 여정이 엿보인다.

이처럼 학교의 불합리한 관행을 바꿔보려는 일념 하나로 시작했다는 전교조 활동. 해야 할 께 너무 많았다.

정부와의 이해 관계만을 반영하는 우리 교육 현실 속 그 어디에서도 교사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었기에. 교육법 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하고 교육청에 가서 열심히 건의도 했다.

그러나 교육청에선 불손한(?) 교사들이라며 냉담한 반응만 보일뿐이었다.

그래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경찰의 눈을 피해 가며 숨박꼭질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만큼 전교조를 인정받고, 학교를 바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드디어 오랜 염원인 ‘전교조 합법화’가 이뤄지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 한 구석은 무겁다고 한다.

십년간 많은 교사들의 노력으로 힘겹게 일궈낸 합법화지만 그보단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 크게 다가와서 일까?“요새 애들은 학교로부터 비안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살고 있어요. 음악 잘하는 애도 있고 미술 잘하는 애도 있고 애들마다 다양한 재능이 있는건데 모든 걸 성적대로만 평가하려니 원…”입시교육에 억눌려 자신의 잠재적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우리의 교육 현실이 못내 아쉽다는 그. 결국 불평등 교육을 조장하는 학교가 학생 개개인이 모두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케 하는 이른바 휴머니즘 교육을 실현하려 한다는 교육철학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십년 만에 빛을 보는 전교조.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보다 나은 교육 현실을 위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는 올곧은 교사들의 열정이 살아있는 곳, 그 곳에 우리 교육의 밝은 내일이 함께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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