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을 다룬 방송국 프로그램이 아무리 화려하더라도 그들의 의도대로 편집해버린‘조작품’을 너무 많이 봐 왔습니다.

왜곡되지 않은 우리들의‘진짜’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드는 수 밖에 없지요. 호화찬란한 영상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라고 얘기하는 노동자영상사업단‘희망’대표 박정숙씨. ‘희망’이 준비하는‘제1회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제’에 시상식 따위란 없다.

영상의 완성도나 예술성도 중요치 않다.

갖지 못한 자가 더 많은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온통가진 자들만의 얘기가 판치는 현실, 이 속에서‘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말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이번 영화제의 핵심이다.

인력과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과감히‘희망’의 첫 대외행사를 벌일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박정숙씨는 이렇게 말한다.

“어느 분이 말하더군요. 10년이 지나도 우리의 영화들을 상영하게 해 줄 이는 아무도 없을지도 모른다고. 노동자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푸는 공간을 만들수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까지는 영화가 노동자들의 얘기를 풀어내는 수단으로 익숙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파급력만큼은 노래패나 풍물패 못지 않다고. 98년 초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원 송인도씨의 분신사건이 발생했던 때였다.

“더 이상 못살겠다”고 신나를 몸에 뿌리며 쓰러져가던 순간 부터 병원으로 실려갈 때까지 기아자동차‘소하리’영상패는 그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날 저녁 야간조 집회현장에서 바로 영상을 쏘았습니다.

온몽이 검게 타 문드러지면서도 송씨는‘30만원짜리 봉급인생’에 대한 응어리를 거친 언어로 중얼거렸던 거죠. 돌료들에게서 바로 반응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분노에 쌓인 대오는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스빈다.

” 그러므로 박정숙씨에게 이 작업은 단순히 현장을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가르치는‘창’이며‘운동의 연장선’이다.

5년 전 부모의 반대를 뿌리치고 노동운동이 하고파 이길로 뛰어든 그때부터 그녀를 키운 것은‘8할’이‘현장에서의 감동’이었단다.

그런 그녀가 풀어놓던 감동은 이런 것이었다.

노동운동에 있어서 아직은‘초보’였던 95년. 거대한 골리앗 투쟁을 떠올리면서 찾았던 현대자동차 파업현장에서 오히려 박씨의 가슴을 가득메운 것은 노동자들 사이의 인간적인 갈등, 삶에 대한 낙천성, 그리고 돈 몇푼이 아니라 인간답기 위한 그들의 의지와 단결된 모습이었단다.

“생존문제가 절박한 현장을 보며 평생을 통해 내가 해야할 운동이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이제는 듣고 배우기도 하지만 나름의 괜관적 시선으로 그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함께 얘기하죠.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카메라는 내게 이들과 연결시켜 준 소중한 끈이었습니다” 힘든 이 길을 선택한 후 차비가 없어 출근하지 못하던 날도 많았다지만 젊은 시절 그 고생의 댓가로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의미를 찾아냈다는 박씨. “월10∼20만원의 쥐꼬리만한 활동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꼬박 바쳐도 아깝지 않을만큼 저는 행복합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에 아무리 고되도 행복하다 서슴없이 말할 수 있는 그녀야 말로 진정 이시대의 ‘희망’같은 존재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영화제’: 21일(월) 오후3시, 대학로 소극장‘오늘’(02) 831-8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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