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에 40년 몸담고 있는 동안 끊임없이 들어온 학생들의 요청은 교수와의 대화였다.

그들은 만나기를 갈망했지만 교수와 대화할 기회를 얻기가 어려웠다고 하였다.

일리 일리 있는 항의라고 본다.

한편 면담시간을 정해주고 학생들을 만나노라면 교수쪽에서 일방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야할경우가 많앗고 학생들은 묵묵히 경청하다 묻는 말에 짧은 대답을 하는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혹시 나의 대화 방법이 미숙하지 않았나 반성하여 방법을 바꾸어 보지만 결과적으로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로 마감될 경우가 보통이었다.

그런데 흔히 나의 ‘좋은 말씀’이라는 것이 학문적인 것도 있지만 대부분 생활 교육면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교정에 계절마다 피고 지는 들풀이나 꽃들에 관심을 가지고 이름을 알아보자, 우리의 메마른 정서가 순화될 것이다.

자연사 박물관 등의 교내 시설을 충분히 찾아서 활용해 보라, 거기서 수많은 새로움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교실의 쓰레기통이 넘치게 하지 말자. 복도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구두소리를 내며 뛰지 말자,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방해가 된다.

채플시간에 신문을 펴고 앉아 떠들지 말자, 공공장소에서의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야 한다.

시험때마다 책상에 벽에 기둥에 만들어 놓은 부정 낙서를 하지 말자, 사회의 부정부패와 다를 것이 뭐냐. 중고등학교에서 이미 익혔어야 할 기본적인 ‘좋은 말씀’을 늘어놓다보면, 과연 이러한 이야기들이 대학생들과의 면담에 적합한 주제인가 의아해진다.

비교적 고상한 훈계로 “우리가 대학인으로서 사회에 흘러들어갈 강물의 이른바 상류의 일급수인데 상류부터 오염시켜야 사회가 깨끗해질 수 있겠느냐, 시험기간에 명예제도를 시행하여 감독없이 시험볼 용의는 없느냐”하면서 실제로 학생들과 함께 양심을 닦는 상징으로 몇 교실의 부정 낙서를 깨긋하게 지워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학생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발전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의 청소는 그 다음 시험을 위한 밀끔한 낙서판의 제공밖에 못되는 것을 경험하였다.

우리 학생들이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 부패의 개선에 관심이 크고 열의가 대단한 것을 안다.

그러나 스스로 개선해야 문제에 대해서는 이제껏 등한하여 왔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기성세대의 오염에 전염이 된 것인가 하여 가슴이 아파온다.

솔직히 말하여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보다 신나고 미래지향적이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어려워도 여러분의 신선함과 젊은 힘으로 어떤 부조리도 말끔히 사라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미래사회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

그동안 우리의 대화는 겉돌고 있었다.

그 이유가 어떻든 대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준비가 부족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눈에 보이는 외형만 갖추려고 했지 대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였고, 대학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이나 자세에 대해 너무나 무심하여 왔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테마로 해서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고 해결을 모색할 때 대학인다운 대화가 이끌어지고 사제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리라 생각한다.

대학에서의 사제관계는 일방적인 훈계가 아닐,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모든 문제들을 테마화하여 제자들은 창의력을 발휘하고 스승들은 지혜를 보태가는 문제 해결의 과정이어야 할것이다.

여러분은 젊고 , 아름답고, 피곤을 보르고, 기억력이 좋으며, 순발력이 있고, 기운찬 인생의 가장 좋은 시절을 누리고 있다.

기성세대가 흐려놓은 웅덩이의 물을 맑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맑은 물이 되어 흐르면서 더러움을점차로 흘려보내 깨끗하게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여러분이 결정만 하면 스스로 맑은 물이 되어 세태에 오염된 더러움을 씻어 버릴 수 있으리라고 본다.

여러분의 자정노력이 성과를 거둔다면 우리의 대학이 대학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사회가 정화되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여러분은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자주 만나 대학다움을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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