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항쟁의 도화선은 1947년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에 반대하는 3.1절 시위군중에 대해 경찰이 무차별 발포, 14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비롯됐다.

특히 6명의 사망자들이 초등학생, 젖먹이를 안은 아난네, 50대 농부 등 대부분 관람군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제주도민을 격분시켰다.

당시의 제주지역은 전통적인 공동체적 결속력을 바탕으로 친일파를 제외한 좌우익이 총망라돼 인민위원회를 조직, 명실상부한 자치기구로 발전히켜 나갔다.

그러나 미국의 점령정책 하에 제주지역이 편입되면서 해방후 신국가 건설운동에 대한 탄압이 본격화되고 점차 미군정당국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또한 6만명에 이르는 귀화인구의 실직난, 생필품 부족, 콜레라에 의한 3백여명의 희생, 대흉년과 미곡정책의 실패 등 사회적 불안요소가 점증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터진 `3.1발포사건"은 제주도민을 자극했다.

그와 함께 남한 내에서 친미 우익 지배체제를 구축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던 미군정은 민심수습을 위한 조치를 취하는 대신, 응원경찰대와 극우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을 파견함으로써 탄압과 저항의 대결국면이 강화됐다.

제주도민은 관공서를 포함한 전도민적인 총파업투쟁으로 경찰의 발포에 항의하고 발포책임자 처벌과 희생자 유족 보상을 요구했으나, 미군정은 `빨갱이를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대대적인 검거선풍을 불러 일으켜 한달만에 5백여명, 1년동안 2천5백여명을 검거했다.

뿐만 아니라 1948년 3월에는 연달아 세 명의 젊은이가 고문치사 당했다.

게다가 생계보장도 없이 파견된 서북척년단은 좌익색출을 내세워 재산을 강탈하고 테러와 강간을 자행하는 등 반인권적 잔인무도한 해악을 일삼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5.10단독선거가 강행되면서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투쟁이 결부돼 48년 4월3일 봉기로 이어지게 된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유일하게 제주도 3개 선거구 중 2개 선거구가 투표미달로 선거무효가 선언됐다.

노인에서 어린이까지, 부녀자에서 지식인까지, 노동자, 농민을 포함해 해외에서 들어온 민간인과 정치인, 군인, 경찰, 공무원 등 모두가 참가했다는 점에서 4.3항쟁은 공산폭동이 아닌, 전 민중의 항쟁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4.3항쟁은 좌익공산폭도들이 어느날 갑자기 일으킨 폭동이 아니라 미군정 경찰과 우익 폭력단제의 살인적인 탄압에 따른 `강요된 저항"이었으며 전도민적인 생존투쟁이었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대규모 군사력을 투입하고도 단기간에 사태를 진압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초기진압에 실패한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를 빨갱이섬이니 제2의 모스크바니 하며 전시에도 있을 수 없는 민간인 대량학살 작전인 `초토화작전"을 전개했다.

해안선을 봉쇄한 후 해안선에서 5km이상의 중산간 지대를 적성지역으로 간주하여 주민소개령과 동시에 방화,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다.

이 초토화작전은 당시 제주도 인구 약 27만명 중 최소 3만에서 최대 8만명에 이르는 고귀한 인명을 앗아가는 전대미문의 참극으로 귀결됐다.

160여개 마을 중에서 130여개 마을이 불에 타 없어져 버렸고, 인구의 절반이 이재민이 돼야 했다.

제주 4.3은 생존을 위한 저항이었으며 민족분단을 반대하여 일어난 항쟁이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제주 4.3은 국가 테러리즘에 의한 인권유린의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설령 봉기를 일으킨 무장대의 일부가 좌익이었다 하더라도 갓난 아이부터 여든 살 노인까지 인구의 1/10이상을 학살한 반인간적, 반문명적 사건을 정당화할 수은 없다.

그러나 그간의 역대정권은 4.3을 좌익폭동으로 왜곡하면서 그러한 반인권적 국가 테러리즘의 실상을 철저하게 은폐해왔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는 일체의 시도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체색해 억압해왔다.

이것은 4.3에 이어진 또하나의 국가폭력이었다.

민족분단, 진실왜곡, 그리고 광주에서 재연된 반인간적 민중학살 등등 질곡의 현대사, 그 뿌리에 제주 4.3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제주 4.3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우리 현대사를 질곡에 빠뜨렸던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걷어내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길이다.

동시에 우리 민족의 양심. 진실. 도덕성을 세우고 화해와 통일로 내닫는 관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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