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년전만 해도 환경조사란에 독서가 취미라고 적는 학생들이 많았다.

취미가 독서랄 수 있다면 모르긴해도 수준급의 독서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취미는 강제성이 전혀 없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밤새워 바둑을 두듯이 밤새워 책을 읽어도 마냥 즐거운 사람, 그 정도면 수준급의 독서인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 남에게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는 말을 듣기위해 독서를 취미로 적는 사람도 많았다.

읽든 읽지 않든 책을 옆에 끼고 다니면서 독서가 취미인 것을 과시하던 사람들이 많던 시대였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취미를 독서로 적는 사람은 드물다.

그렇게 적는 것이 쑥스러워인지 아니면 정말로 책을 읽지 아니 해서 그런지 모를 일이다.

하기는 다른 취미라고는 가질 수 없는 시절에 독서밖에 더 있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책을 읽는 척 할 필요가 없다.

책을 읽는 척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었으나 이제는 그 효력조차 떨어진 모양이다.

그렇다.

요즘은 독서 같은 것으로 사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인기품목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 이전에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능력 있고 장래도 촉망됐으나 이제는 형편이 달라진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의 가치관에서 그런 것이 나타난다.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은 텔레비전에 출현하는 탈렌트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책을 별로 읽지 않아도 찬란한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경제는 수입보다 수출이 많아야 좋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와 정 반대다.

수입은 없는데 수출만 하고 있으면 정신이 고갈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 구성원인 사람들이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없이 밖으로 내품는 것만 하면 그 사회의 풍토는 황폐화되기 시작한다.

모든 젊은이들이 탈렌트를 선망하다 보면, 안으로 축적하는 것은 소홀히 하고 밖으로 내품는 것만 힘쓰는 세태가 된다.

참으로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서적의 출판량으로 따지면 한국도 세계에서 몇 째 간다고 한다.

선진국 대열에서 조금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만큼의 수준으로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서적의 대부분이 바로 입시 준비용이기 때문이다.

그 입시용은 대부분 한 해가 생명인 책이다.

책의 가치는 얼만큼 오래 읽힉 있는가에 달려있다.

한 해가 생명인 책이 대부분인 출판계,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부끄러워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한국인의 독서 습관을 망친 것은 바로 그 입학시험이다.

입시공부도 분명히 책을 읽으면서 공부하는 것이니까 독서는 독서다.

그러나 입학시험과 당장에 연관되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만연돼 있는 듯하다.

여간한 지식층도 이에서 예외가 아니다.

자기 자녀가 영·수·국을 공부하지 않고 세계 명작을 읽고 있으면 불안해 한다.

심하면 꾸중을 해서 그런 독서는 못하게 하고 입시 공부만을 하도록 종용한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말로만 세계 명작을 읽으라고 해놓고, 학생들이 마음 놓고 세계 명작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 주지 않는다.

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독서> 과목이 설정되어 있다.

겨우 2년 됐지만 바로 그러한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사실은 유명무실이 되고 있다.

어느 학교도 독서 수업을 실질적으로 하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생들의 독서 습관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무어라고 말하든 대학생은 나라의 엘리트다.

이전이나 지금이나 그것은 변함 없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생들은 스스로 엘리트 의식을 포기하는 듯이 보인다.

탈렌트들에게 정신을 뺏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설사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하는 척이라도 했다.

그리고 독서하는 데 가치의 무게를 많이 실었다.

지금의 대학생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독서하는 척도 하지 않고, 독서에 가치를 실어주지도 않는다.

그 증거로 이전의 대학생들이 모였을 때는 읽었던 책이 화제의 초점이었다.

반면에 요새 대학생들의 화제는 텔레비전의 탈렌트들이다.

지적 분위기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 탈렌트들 말이다.

그러고도 지금의 대학생들을 나라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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