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협 공동의장 임기란씨

“종로·남대문 경찰서는 ‘단골’일 정도로 서울시내 안가본 경찰서가 없고 ‘닭장차’도 무수히 탔죠. 그런데 우리는 잡혀가면 뭘 잘못했냐고 소란을 피우고 난리였거든요. 5공시절에는 아예 우리를 난지도나 김포 매립지 같은 곳이 버리는 거예요” 눈비를 맞는 상황에도 교도소·안기부뿐 아니라 철거민 등 소외된 사람들이 잇는 곳이면 달려가 맨 몸 하나로 싸우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공동의장 임기란씨. 전두환 정권하에 어느 때보다 ‘민주화’의갈망이 컸던 시절, 유신독재시절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아왔던 가족들과 당시 구속된 수많은 학생들의 가족들이 모여 조직된 것이 바로 민가협이고, 여기에 창립 초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싸워온 임씨는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잔뜩 패인 채로 칠순을 1년 앞두고 있다.

85년 ‘가락동 민정당 연수원 점거사건’으로 구속된 아들을 위해 이 길로 뛰어든 그녀에겐 양심수 모두가 자신의 자녀이고 부모같다고. 그녀도 처음엔 ‘좌경분자’란 이름으로 갇혀있는 아들을 보며 걱정이 앞섰단다.

그러나 재판과 정에서 아들의 진술을 들으며 강한 믿음으로 지지하게 됐다고. “다른 아들딸 챙기느라 아들 녀석에겐 영치금도 면회도 제대로 못한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다행히 재심에서 풀려나 어머니로서의 내 고통은 수십년간 옥바라지 해온 가족들에 비하면 별 거 아니죠” 아들의 석방 이후에도 민가협을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임씨는 ‘비참한 세상을 내눈으로 너무 많이 봐 버린 탓’이라고 얘기한다.

민가혐 활동 이후 행복한 아낙의 꿈을 포기하고 ‘여장부’로서의 삶을 택한 임씨가 양심수 석방을 외친지도 벌써 13년이다.

하지만 지난 정권만 해도 한총련 이적 시비를 운운하며 수백명의 학생양심수란 결과를 낳는 등, ‘빨간칠’을 한 채로 양심수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좀처럼 변할 줄 모른다.

“죄가 있다면 분단된 조국고 ㅏ민주화를 역행하는 시대에 있지 양심과 정의를 지키고자 한 그들에겐 죄가 없어요. 난 양심수들의 무죄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올해는 임씨의 가슴에도 어느덧 봄은 오는가 싶었단다.

50년만의 정권교체, ‘양심수’출신 대통령의 당선으로 민가협 어머니들은 ‘양심수 전원 석방’에 한껏 희망에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 시대는 아직도 ‘빨갱이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지 양심수 석방 숫자는 날이 갈수록 줄어만 든다.

민가협 어머니들은 최근 들어 제법 두툼한 양심수 전원 석방 서명서를 들고 국회·국민회의 당사 앞 등 매일같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전쟁이 나면 나라를 지키는 것은 몇몇 장수보단 수많은 이름없는 무명용사이듯이 아무리 총칼로 윽박질러도 잘못된 세상에 바른말하는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에 이 땅의 민주화는 성숙할 수 있었죠. 난 사람들이 이젠 색안경도 벗고 좀 더 넓은 눈으로 양심수를 바라봤음 좋겠어요” “인권의 비참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나머지 여생을 바치기로 다짐했다”는 임씨의 꿈은 하나, 이땅에서 ‘양심수’란 말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바램이다.

고달픈 싸움의 연속이지만 양심수의 ‘부끄럽지 않은 가족’이기 위해 떳떳이 운동할 것이라는 그녀 앞에 서 암담한 시대가 종말을 고할 그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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