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 설립 움직임 및 향후 방향

IMF 사태와 관련 임금체불·불법해고 등 부당노동행위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철도사업장 노조·대구 국제정공·이천전기(주) 등 기존 어용·무노조 사업장에서의 민주노동조합(민주노조) 설립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철도사업장의 경우 3월초부터 실시된 현장지부 노조간부 선거에서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민주노조건설을 지지하는 후보들 과반수 이상이 당선될 것으로 조심스럽게 전망되고 있다.

기존 노조는 철도청과 결탁, 노조간부들이 각종 이권사업을 챙기며 노동자들의 불이익을 묵인해 타 노조관계자들 사이에서 ‘골수어용노조’란 평가를 받을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철도노조의 민주화 움직임은 철도사업장내의 정리해고 저지와 열악한 작업환경 개선의 실마리가 될 것으로 풀이되고 있으며 민주노조의 건설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전력공사를 비롯한 기존 어용노조 사업장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이천전기(주)의 경우 노조위원장과 회사측이 야합, 정리해고를 실시하려 하고 있어 조합원들이 민주노조 사수·고요안정쟁취·노조위원장 불신임 투쟁에 나섰다.

또한 무노조 상태에서 임금체불과 잔업시간연장 등 불이익을 당해왔던 대구 성서공단의 국제정공을 비롯 여러 사업장에서 노조 설립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러한 각 노조의 민주화 움직임에 대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구본부 노조관계자 정훈용씨는 “97년말부터 불어닥친 경제위기와 정리해고·근로자파견법 합법화로 노동강도 강화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고용 안정에도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민주노조 설립은 이러한 현장노동자들의 자발적 움직임을 기반으로 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노동자들이 민주노조의 필요성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민주노조운동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점은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이며 이는 현장 노동자들의 자발성과 수준높은 정치의식 없이는 이룰수 없다.

이러한 현장의 부분적인 움직임과는 달리 ‘민주노조운동의 구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총의 상층 지도부들이 노사정위원회 이후 보여준 타협의 자세는 노동조건을 한층 약화시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이뤄진 노사정 합의에 대해 현장노동자들은 노동자 생존권을 경제위기와 맞바꿨다며 거세게 저항했고 결국 이것은 2월9일 치뤄진 민주노총 임시대위원대회에서 기존 지도부의 총사퇴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꾸려지는 등의 결과를 낳았다.

이를 계기로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을 해결하지 못하고 노동자에게 고통전담을 강요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노사정위에 대항한 투쟁 움직임이 어느 정도 정비되는 듯 했다.

그러나 2월 13일 여론에 밀린 비대위의 총파업 철회 발표와 다음날 곧바로 이어진 정리해고제·근로자파견법 합법화를 비롯한 후퇴·변질된 노사정 합의안의국회통과는 기층 노동자들의 상당한 반발과 함께 IMF 시대의 노동강도강화와 고용불안정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에 대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한노정연) 곽탁성씨는 “민주노총 비대위의 총차업 철회 이후 전체적인 노조운동이 침체되는 분위기에 있다”며 “민주노총이 앞으로도 기존의 관료화와 노동자 생존권 문제에 있어서까지 정치적 타협의 모습을 보인다면 10여년의 민주노조 운동에 커다란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시기에서 기층 노동자들 중심의 자발적 민주노조 설립의지는 경제위기 속에서 ‘기득권 계층의 국민대화합 이데올로기’에 타협적 모습을 보여온 기존 상층 노동지도부에 반성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긍정적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은 국지적인 움직임일 뿐, 전체 민주노조 흐름으로 끌고 가기에는 현실적인 한계와 변수가 많다는 의견이다.

한노정연 경현자씨는 “중소기업의경우 무더기 도산사태를 빚는 상태에서 폐쇄되는 노조에 비해 설립되는 수는 미비하다”며 지금은 산업별 노조 건설과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안정에 주력할 시기라고 주장한다.

경제위기를 앞세운 정리해고 등 일방적인 고통분담이 이뤄지고 있는 시점에서 노조설립 움직임은 노동자들의 일시적인 흐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현장 노동자의자발적 단결은 민주노조 운동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기득권 세력의 이데올리기 공세가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현장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민주노조운동의 재정비 기회로 삼을 때 ‘노동자의 제권리 찾기’는 도약의길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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