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 한 잡지에서 대학생 해외 영어연수에 대한 의견을 담은 글을 청탁받아 쓴 일이 있다.

그글을 준비하면서 약간의 조사를 했었는데, 본교 영문과의 경우 최근 3년간 해외연수를 위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의 숫자가40여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요즈음 취업난이 극심하다니까 해외연수의 동기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을 이용하여 여행을 겸해 잠시 다녀오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 많은 학생들이 도대체 무슨 영어를 얼마나 굉장하게 배운다고 학교공부를 전페하고 바깥으로 나간다는 말인가. 그 글에서의 내 결론은 무조건 외국에만 나가면 저절로 영어가 배워질 거라는 기대는 버리고, 우선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훈련을 충실히 받으라는 것, 그리고 현지경험이 꼭 필요하다면 방학을 이용해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Surmmer School이나 특정한 주제가 잇는 연수프로그램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해외연수를 막을 수가 없다면 좀 더 경제적인 방식으로 가도록 해보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권고하긴 했지만 사실 내심으로는 그것도 마땅치가 않았다.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지만 2~3개월의 해외연수를 위해서는 적어도 수백만원의 겨이가 소요될텐데 그것을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수의 학생들은 그럼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외국에 꼭 가야만 ‘살아있는’영어를 배운다는 말인가? 도대체 우리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갖춰야 하는 영어실력이 영어원서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you know”,“I mean”을 연발하는 이른바 ‘본토’생활영어라는 이론은 어디서나온 것인가? 교육부 정책실인가 대기업 기획실인가? 나는 사람들이 영어교육에 관해 별 근거도 없이 내세우는 몇가지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가령 대학생의 영어교육이 회화중심으로 재편돼야 한다는 최근의 통설도 나는 믿지 않는다.

과거의 강독중심의 교양영어가 절름발이었다면 매일같이 “좋아하는 색깔이 무엇니냐”따위의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이는 이른바 ‘회화 ’위주의 교육도 절름발이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듣기·쓰기·말하기·읽기의 기능을 통합적으로 가르치자는 우리 학교의 최근 방침은 물론 건전한 것이지만 이제는 천덕꾸러기가 된 ‘강독’의 중요성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대학교육이 특정한 ‘기능’(만일 영어회화가 그것과 흔히 짝을 이루는 컴퓨터실습처럼 하나의 기능으로 취급될 수 있다면)의 습득을 목표로 구서오대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대학은 창조적 사고력을 배양하는 곳이지 직업학교가 아니지 않은가? 또 전공의 특성상 나는 교내의 여러가지 영어시험에 관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접하게 도는 학생들의 영어 이해력의 실상(혹은 참상)은 점점 꼬부라지는 학생들의 영어발음만큼이나 나를 어지럽게 한다.

대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이 외국인 길안내나 하자는게 아니라면 그들에게 필요한 영어의 구사력은 풍부한 어휘력과 그것을 적절하게 조직해 표현해 내는 사고력이지 미국냄새나는 몇마디 관용구에 대한 지식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력은 영어와는 별 상관 없는 철학과나 사회학과, 물리학과 등에서 개설한 교양과목에서 더 잘 얻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영어를 하는데 필요한 능력은 가령 ‘국어와 작문’같은 과목에서도 얻어질 수 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우리말을 잘하는 사람이 대개 영어도 잘 하거나, 적어도 잘 할 가능성이 많다.

흔히들 ‘회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외국인과 마주치면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면서 셰익스피어는 배워서 뭘 해’하는 식으로 영문과의 교과과정을 걸고 넘어진다.

이러한 얘기를 하는 사람은 대개 셰익스피어가 소설가인지 극작가인지도 확실히 잘 모르는 사람이기 십상이지만 이러한 비판은 일반인들에게 의외로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는 듯 하다.

그래서 나는 ‘영어회화’와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은 ‘낭만주의 영시’같은 내 과목을 여전히 신청해주는 학생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영문학과에서 일반인들의 몰이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셰익스피어와 티킨즈와 워즈워스를 강의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읽으면서 배양하는 문학적 감식력과 창조적 감성이 인문교육의 본래 목적이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이 요즘 강조되는 ‘영어실력’의 배양에도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외국연수를 다녀와 ‘영어가 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초조해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회화학원에 헛돈을 쓸 것이 아니라 전공과목의 원서를 좀더 열심히 들여다 보라. 그대에게 필요한 영어실력은 그 안에 있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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