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강행통과에 이은 파업의 물결과 경기침체·한보사태에 이어 현직 대통령 자제의 국정논단 등으로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는 87년 민주화이행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다.

현 정권뿐 아니라 정치권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경제·사회 전 부문에 걸친 총체적 위기의 책임은 과연 누가 져야 하는가? 위임받은 권력을 그릇되게 행사한 대통령에게 비난의 화살을 집중시킬 것인가? 아니면 선택을 잘못한 국민들에게 그 책임을 돌려야 할 것인가? 권력남용과 부정부패를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온존시켜 온 제도상의 문제점은 과연 없는가?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 초래한 폐해를 반복해서 목격한 국민들 사이에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또 현재와 같은 위기는 명백히 권력구조를 포함한 정치제도 전반의 분제점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가 그 개선방향에 대한 진지한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단히 역설적이지만 이화 같은 성찰과 모색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현재 기성정치세력의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권력구조 개편론이다.

이들의 주장이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순사한 염원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입각해 있음을 국민들은 잘 알고 있다.

제도개편에 대한 논의를 이들이 선점해 버린 겨로가, 제도에 관한 모든 문제제기가 편협한 정파적 의도를 지닌 것으로 의심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돼 왔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제정된 현행 헌법과 선거법 등 정치관련 법규들이 당시 정치권을 분점하고 있던 정파들간의 정략적 담합의 산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그 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기돼 온 여러 갈래의 개헌론들이 정세화의 굽이굽이마다 정략적 이해타산에 입각해서 제기됐던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기성정치권이 제도개혁의 내용을 독점하는 어떠한 개헌도 지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동안 한국정칙 양산해 온 문제들은 정치엘리트의 세대교체만으로 시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보수독점의 권력집중적 정치구도 아래에서 건전한 민주적 정치관행이 정착될 수 있읠라고 믿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현행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일단 집권한 대통령의 국정수행 방식과 내용에 대해 국민이 견제할 수 있는 모든 제도적 장치를 차단해 버렸다.

그 겨로가 전직대통령들처럼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채 국운과 민행이 대통령 개인의 도덕성과 자질에 전적으로 좌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돼 왔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제의 가장 심각한 폐해는 이 제도가 한국정치의 보수독점성을 더욱 심화시켰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보수일색의 획일적 목소리가 정치사회를 지배하는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심대한 장애요인이 돼 왓다.

정치엘리트들의 지역할거형 세력형성과 그 정략적 재편의 반복으로 일관해 온 파행적 정당정치의 지속, 그에 따른 지역갈등의 심화, 그리고 건전한 정책적 비전을 갖춘 건강한 보수세력의 성장 저해, 여·야를 불문한 광범위한 정경유착의 지속 등이 그것이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이같은 파행성은 권력구조를 포함한 정치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없이 치유되기 힘들 것이다.

특히 대통령 1인에 대한 과도한 권력집중보다 내각제에 입각한 권력의 분산과 분점은 오히려 정치적 타협·사회적 통합·경제적 포섭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증대시켜서 궁극적으로 사회와 정치의 민주적 안정에 기여하게 될 수 있다.

그러나 권력구조를 이같이 개편할 때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은 새로운 정치세력의 정계진입을 가로막고 있는 제도적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작업이다.

즉 선거제도와 정당제도를 포함한 정치적 법령의 전향적인 개혁이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정치적 제도개혁 논의를 기성 정치세력이 독점해서는 안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이러한 방향으로의 개혁을 결코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들은 현행 대통령제의 폐해를 겪어본 후에 권력구조를 포함한 제도개혁을 본격적으로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요구가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토대로 시민사회내에서 강력하게 제기될 때 비로소 기성 정치권의 정파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한국 민주주의의 진정한 발전을 향한 제도개혁의 실마리가 풀려나가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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