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해보자. 한때 좋은 가문에 시집간다고 부러움을 샀으나 남편이 돈, 권위,폭력,성으로 군림하는 졸부이라는 깨달음에 가슴앓이하는 어머니의 단 한가지 ‘현명한’복수는 모진 마음 먹고 다섯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었다.

외국과 무역사업한다고 팔아치워 버린, 좌청룡 우백호 명당처 솔대숲 아레 옛집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남은 고향의 선산과 과수원을 지키기 위해 군청·고속도로공사와 싸우고 선산 정상에 대형 광고판을 세우려고 교섭해온 대기업의 공세를 물리쳐야 했던 어머니. 그러면서 내 두 아들은 제 애비같이 키우지 말아야지, 내세딸은 나처럼 키우지 말아야지 다짐하시던 어머리, 어머니들.... 한국은 작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그러나 경제논리만을 앞세우는 정치경제인들 속에서 이제 우리나라는 더이상 물 맑고 공기좋은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다.

우리는 분명히 과욕·과신해 왔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다섯자식 잘 키우는 어머니의 역할일까?그것은 아마도 우리의 아들, 딸을 민주적 문화인으로 키우는 것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현명한’복수다.

그러면서 의로운 지도자가를 기다려 볼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워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던 백범 김구 정도의 의인이 나타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대학을 현실에 재빠르게 편승하는 사람들보다 꿈과 이상이 있고 ‘문화의 힘’을 믿는 지성인들로 가득찬 상아탑으로 지키는 일 밖에 없다.

여기저기 ‘97문화유산의 해’란 표어를 볼 대 쓴웃음이 나온다.

몬화유산은 옛날부터 현대까지 오랜 세월 무형·유형으로 축적된 우리의 혼불임에도 불고하고 문화와 체육을 합쳐 문화체육부로,그 책임을 선심성 인사로 채워온 정부가 또 일회성 이벤트적 발상을 내놓았다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온 것이다.

많은 외침과 산업화, 개발정책으로 한반도의 문화유산 유실은 엄청나다.

이제 남은 것이라도 우리가 지키고 창조의 밑거름으로 쓰려는 고집과 노력이 요구된다.

본교는 박물관을 세우고 훌륭한 문화유산을 수집·보존함으로써 한국문화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대박물관은 대학박물관의 효시이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키워 나가고 교육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과제로 남아있다.

이대박물관은 우리 문화유산의 국외반출과 유실·파괴를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35년 김활란총장때 세워졌다.

학교가 부산으로 피난을 가서도 필승각이라는 전시실을 마련, 폐허속에서도 문화의 힘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현재 재학생들이 ‘마징거 제트’라고 부르는 본교 박물관은 또 하나의 역사적 도약으로써 선구자들의 선견·꿈·용기의 결정체인 것이다.

대학박물관의 주 대상은 대학생이며 주 목표는 그들의 전인적 교육이다.

뿐만 아니라 이화공동체를 위한 박물관으로서, 지역·사회를 위한 박물관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학 내의 부수적 기관이라는 대학의 수직적 한계와 대학 행정기구 의식의 한계 내에서 대학박물관이 활성화된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본교 박물관 역시 지난 수년간의 낮은 학생관람수로 그러한 한계를 증명해 왔다.

결국 그것은 문화유산을 창고에 사장시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 박물관의 소장품 수준이 높을수록 대학 내는 물론이고 나아가 국가적 손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캠퍼스 내 발물관에 대한 과감한 의식개선이 필요하며 열려있는 문화공간으로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수립·인력지원·시설보완 지원이 필요하다.

박물관은 창조적 활용에 의해 다각적이고 심오한 공헌을 대학과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다.

대학당국의 취업강화,지원체계의 활성화 계획, 이화21세기 대학 캠퍼스 공간활용, 졸업생 재교육 시스템 확장 등의 기본 방침에 박물관이 의욕적으로 참여하고 그 성공적 실천에 이바지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세계 공동체 속에서의 보편성과 한국의 특수성을 동시에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통과 역사에 대한 지식은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려는 이화인들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 요건이다.

그리고 박물관은 열린 문화공간으로서, 그리고 진지한 문화유산의 연구소로서 다양한 역할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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