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단일안을 계기로 본 노개투의 평가와 향후 과제

96년 12월 26일 새벽을 기해 감행됐던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 처리에 따라 촉발된 사상 초유의 정치파업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노동부의 집계에 의하더라도 파업개시 26일동안 연인원 5백만명의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가하였고 참가 노조수에 있어서도 사상 최대규모였다.

넥타이 부대를 비롯 학계·종교계·법조계·시민사회단체를 망라한 범국민적인 저항은 87년 6월항쟁을 방불케 앴고 이 기간동안 전국적으로 3천명에 가까운 대학교수들이 노동법·안기부법의 무효화를 선언하는 성명에 동참했다.

이 파업에 대해 정부는 ‘명백한 불법’이라고 주장, 사법처리의지를 밝혔으나 상당수의 법학교수들은 ‘정부가 국회를 통과했다고 주장하는 법안이 근로자와 노동조합의 권리와 경제적 이익을 크게 제한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우선 변형근로시간제의 일방적 부활로 인해 근로자들은 졸지에 12시간분의 시간외 근로 수당을 박탈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또한 임금협약의 유효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 임금인상의 기회가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단체교섭권의 본질적인 제한이 이뤄졌다.

이화 함께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대체근로의 전면적인 허용·노조전임자와 쟁의행위기간중의 임금지급금지 규정 등으로 인해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무력화되고 말았다.

법학교수들은 이 규정들이 근로자의 삶의 질 저하는 물론 노동조합의 권리를 현저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헌법파괴적 조치로 ‘총파업은 그로자와 노동조합의 경제적·사회적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만 아니라 헌법질서의 수호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법하다.

’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1월 21일에 열린 청와대 영수회담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노동법·안기부법의 국회재론과 구속영장이 발부된 노조간부 20여명에 대한 사법처릴르 하지 않겠다고 약속함으로써 국민적 저항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임시국회는 이로부터 4주 후에야 개원돼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늦장 끝에 날치기 노동법의 시행일을 불과 5일 앞둔 2월24일에애 단일안을 마련했다.

이후 열린 여·야협상은 난항을 거듭한 끝에 법개정시한인 2월28일 넘기고 3월8일(토)에애 여·야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여·야합의안의 냐용을 살펴보면 날치기 법안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합의 내용중 유일노조 강제규정 폐지에 대해서는 기업단위5년 유예라는 정부안으로 돌아갔고, 쟁의행위시 대체근로의 경우 동일 ‘사업’내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이는 동일‘사업장’내의 대체근로만을 허용키로 한 노개위의 공익안·경영계안과 대체근로를 전면허용한 정부안 사이의 절충이다.

위법적인 단체협약 시정명령은 정부안대로 관철됐다.

쟁의행위 기간중의 임금지급 여부와 관련해서는 ‘사용자는 쟁의행위기간 중 임금지급 의무가 없으며, 노조가 임금지급을 요구하여 이를 관철할 목적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이를 위반하여 쟁의행위를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합의했다.

이는 일단 노개위 공익안·경영계안 및 정부안 사이의 절추으로 보이나 처벌규정을 별도로 둠으로써 정부안 족으로 크게 치우친 것이다.

또한 노조전임자 급여의 경우 여·야는 전임자 급여 지급금지를 5년 유예하는 방안에 합의했으나 그 골격은 정부안·경영계안에 치우쳐 있다.

특히 집단해고의 시행을 2년간 유예한다고 해도 이로써 집단해고 자체가 유예되는 것이 아니라 2년후부터는 적당히 요건만 갖추어 해고하는 경우에는 이를 ‘정당한 해고’로 간주한다는 규정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집단해고의 요건마저도 형식적인 것으로 열거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일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자의적인 집단해고를 사실상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것이엇 해고제한법리를 부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보듯이 여·야가 합의한 내용은 대체로 정부안·경영계안과 노개위공익안의 중간에서 위치하고 있다.

이는 두 야당이 마련한 66개항의 단일안이 비판의 여지가 많은 노개위공익안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짐작한 바 대로이다.

재론 거쳐 국회를 통과한 내용은 당초 정부·여당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1월21일의 대통령 결정이 무색해지고 있다.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교원·공무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수포로 돌아가 이것만으로도 ‘개혁’은 이미 실종된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정부와 여·야당은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책무를 방기하고 말았다.

15대 국회의 여당과 야당은 정치현안에 있어서 보여준 치열한 대립에도 불구하고 노동법개정에 있어서는 본절적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이로써 정부는 물론 여·야 모두 노사관계에 수많은 규제를 추가함으로써 ‘선진적 노사자치주의의 확립’이라는 방향에 역행하였다는 역사적 평가를 면치 못할 것이다.

97년 노사관계에서는 임금교섭에서부터 심한 충둘이 예상된다.

정부는 5%를, 제계는 동결을 주장하지만 노동계는 임금협약의 유효기간이 2년으로 연장된 만큼 2년차의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두자리 수의 인상을 제시하는 노동계와 제로인상을 주장하는 경영계사이의 차이는 그 어느때보다 크게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임금교섭은 난항이 예상된다.

임금 이외의 단체협약에 있어서도 개정법의 효력발생과 함께 곳곳에서 충돌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이는 개정법의 내용이 단체교섭권을 크게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정노동법은 3월12일 시행됨과 동시에 다시금 개정요구가 드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결국 군사정부에 의해 삽입된 독소조항의 삭제와 노동기본권의 국제기준으로의 보장이라는 본래의미의 노동법개혁은 차기 정권의 과제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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